플라이두바이 FZ1073 편에 탑승했던 한 승객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안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조종사(부기장)가 기장을 흉기로 공격해 비행기를 추락시키려 한 사건이 벌어졌다. 기장이 피투성이인 와중에도 조종실 문을 열었고, 승객들이 부기장을 제압해 이스라엘인 166명 등 탑승객 174명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로이터통신과 이스라엘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UAE 저비용항공사 ‘플라이두바이’의 FZ1073 여객기는 두바이국제공항을 출발해 텔아비브로 향하던 중 갑자기 급강하했다.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여객기는 이륙 후 2시간 17분이 지난 뒤 약 30초 만에 고도가 3만4000피트(약 1만300m)에서 1만7000피트(약 5200m)로 떨어졌다.
지난 3월 오스트리아 상공을 비행 중인 플라이두바이 여객기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승객들은 처음에는 심한 난기류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항공기가 곤두박질치며 짐칸이 열리면서 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정전까지 발생했다. 아수라장이 된 기내에서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혼란 속에서 일부 승객이 조종실로 달려갔다. 이스라엘 배관공인 승객 야니브 하윤은 AP통신에 “한 여성 승객이 ‘칼에 찔렸다’고 외친 뒤 기체가 크게 흔들렸고, 조종실에서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당국 설명과 승객 증언에 따르면 조종실에선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만 국적의 부기장이 기장을 흉기로 공격했다. 인도 국적의 스미트 마차르 기장은 피투성이가 된 채 조종석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저항하며 조종실 문을 여는 버튼을 눌렀다.
지난달 30일 플라이두바이 FZ1073 편에 탑승했다 사투끝에 부기장을 제압한 승객 야니브 하윤(가운데)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윤은 조종실로 들어가 조종장치를 파손하려던 부기장의 목을 감싸 붙잡았다. 이후 하윤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등 5명이 부기장을 제압했다. 항공기는 조종석이 빈 채 추락중이었다. 이에 하윤은 항공사고 다큐멘터리에서 본 대로 조종간을 잡아당겨 고도를 높였다.
그 후 기내에 타고 있던 비번 조종사들이 조종간을 넘겨받아 항로를 사우디아라비아로 변경해 타부크 공항에 비상착륙시켰다. 여객기가 급강하하면서 꼬리 수직날개 방향타가 뜯겨나갔지만 무사히 착륙했다. 전직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 스티브 아로요는 AP통신에 “비행기가 산산조각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플라이두바이 FZ1073편의 인도인 기장 스미트 마차르는 지난달 30일 오만 국적의 부기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도 조종실 문을 열어 승객들이 부기장을 제압할 수 있도록 도왔다. AFP=연합뉴스
이후 치과의사인 승객 쇼타 무사예프가 부상을 입은 마차르 기장에 대한 응급처치에 나섰다. 사우디 주재 인도대사관은 착륙 후 병원으로 이송된 마차르 기장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항공사, 조사를 진행 중인 사우디 당국이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아직 밝히진 않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당국은 이번 사건을 2020년 이스라엘과 UAE가 체결한 국교 정상화 협정을 훼손하려는 테러 시도로 규정했다. 두바이~텔아비브 노선은 2020년 9월 이스라엘, UAE, 바레인 등이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된 지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출범했다.
범행을 벌인 부기장은 플라이두바이에 입사한 지 채 8개월이 되지 않았다. 플라이두바이 소속 한 조종사는 이스라엘 현지 방송에 “(용의자는) 종일 지나치게 기도를 많이 했으며, 여성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거부했다”며 그가 종교적 극단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고 말했다. 플라이두바이는 안전 등을 위해 이스라엘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오는 27일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에선 이번 사건을 둘러싼 정쟁도 벌어지고 있다. 네타냐후 측은 핵심 지지층인 강경 보수 유권자 결집에 나서고 있다.
반면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 등은 현 상황이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던 것과 유사하다며 네타냐후 정부의 안보정책 실패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