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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선] 나랏빚은 금리가 오를 때 민낯을 드러낸다

중앙일보

2026.10.01 08:14 2026.10.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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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일본 기업들은 이달부터 식품·음료 가격을 잇달아 올린다. 인상 품목은 3000개가 넘는다. 원재료 가격 상승 여파다. 30년 넘게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일본은 지금 인플레이션과 씨름하고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일본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30년 넘게 이어온 확장재정의 부메랑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빚을 내도 이자가 거의 들지 않는 나라’였다. 금융완화 정책으로 금리를 눌렀고 정부는 그 틈에서 재정을 확대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나랏빚은 민낯을 드러낸다.

국가채무 늪에 빠진 일본 경제
빚으로 빚 갚는 악순환 되풀이
한국, 미래기금보다 빚 갚아야

그 청구서는 금리 상승과 함께 날아들고 있다. 일본은행은 2024년 3월 제로금리를 17년 만에 종료한 이후 정책금리를 1.25%까지 올렸다. 일본의 2027회계연도 예산 요구액은 143조656억 엔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국채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는 돈은 36조6386억 엔으로 사상 최대다. 올해보다 5조3628억 엔, 17% 넘게 불어났다. 국채 이자비 산정에 적용하는 장기 시장금리도 올해 3.0%에서 내년 3.8%로 상향 조정됐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돼 나랏빚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채무가 엔화 약세에 대응할 정책 여력마저 제약한다는 점이다. 엔화 약세는 에너지와 식료품 등 수입물가를 끌어올린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리고 싶지만 운신의 폭이 좁다. 금리를 올리면 국채와 차입금을 합쳐 연말 1500조 엔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채무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웃도는 막대한 빚의 역습이다. 반대로 금리 인상을 주저하면 엔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국가채무가 통화정책의 손발마저 묶는 것이다.

물가 대책도 재정의 딜레마를 키운다. 일본 정부는 내년 4월부터 2년간 현재 8%인 식품 소비세율을 1%로 낮출 방침이다. 가계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지만 세수 감소는 재정에 또 다른 부담이다. 감세는 시작하면 끝내기도 어렵다. 세율을 원상복구하면 사실상 증세가 된다. 정치적 저항으로 감세가 장기화하면 세수 기반은 더 약해진다.

결국 일본은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세금만으로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갚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한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견딜 수 있었지만 금리가 오르면 새 국채의 이자가 높아지고, 늘어난 이자가 다시 재정지출을 압박한다. 국가채무의 늪은 이렇게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일본은 재정 건전성이 한번 흔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나랏빚은 단순히 후세대가 갚아야 할 숫자가 아니다. 금리와 환율, 물가와 세금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정책 수단을 제약한다.

일본의 현실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 들어 또다시 재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7년도 예산안은 820조9000억원이다. 올해보다 12.8%, 93조원 늘어난다. 이런 수퍼 예산의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 기대가 있다.

그러나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 뒤에는 어김없이 침체기가 왔다. 반도체 호황은 영원하지 않지만 세수 풍년 때 펑펑 늘린 지출은 나랏빚 더미로 남는다. 내년에 지급하는 국채 이자만 40조원이 넘는다. 채무 감축보다 지출 확대가 앞서면서 세수 풍년인데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06조원 늘어 1519조8000억원에 이른다. 나랏빚이 불어나고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 부담도 커진다.

정부가 상당액을 재량으로 쓸 수 있는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은 더 우려스럽다. 정부는 45조원가량을 성장동력·청년·지방·교육 등에 투자하고 국채 신규 발행 축소에 12조5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세수가 더 늘면 기금이 218조원까지 불어난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시적인 초과세수는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데 우선 활용해야 한다. 거대 기금이 명절 농축산물 할인 같은 선심성 사업에 쓰이면 결국 정부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이 재정 관리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더 있다.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국내에서 소화해왔고 엔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거래되는 통화다. 그런 엔화조차 약세를 면치 못하고 인플레이션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국가채무 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엔화보다 국제화 수준이 낮은 원화로는 유사시 대응력이 떨어진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당시의 탄탄한 재정이 있었다. 일본이 보여준 확장재정의 늪은 한국의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김동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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