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년 지기 이웃으로 살아온 K 사장님의 장례식이 두어 달 전에 있었다. 의사의 진단대로 일 년 반을 환자 자신의 강력한 의자로 버티면서 아흔 해의 생애를 살았다. 많은 분이 성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드렸다. 아들과 딸은 완벽하고 엄격했던 성품의 아버지를 추억했다. 아들은 자식들이 잘살아가도록 터를 닦아 놓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장례식 후 식당에서 그분이 샌디에이고에서 긴 세월 살아온 삶의 흔적을 보았다. 우연히 화장실 입구에서 만난 K 사장님의 대학 동창 노부부는 오렌지카운티에서 왔다고 했다. 생전에 가끔 이민 초기의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오렌지카운티를 다녀왔다던 그분의 신나는 대화들이 나의 뇌리에 스쳐 갔다.
처음 이민 와 살던 동네에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한인 운영 세탁소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인들이 선호한 비즈니스가 리커 또는 세탁소였다. 세탁소 가격은 보통 집값의 서너 배쯤 했다.
우리 동네는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 오래된 도시다. 주민 대부분이 백인이어서 한인을 보면 누구나 반가웠다. 돌아보니 K 사장님의 본점 세탁소 상가 길 건너편 건물에는 한인이 운영하던 도넛 가게와 구두수선 가게가 있었다. 종종 그곳에 들러 대화를 나눴던 추억들이 있다. 모두 고생을 많이 하던 이민 1세대 부부들이다. 지금은 샌디에이고에 한인 대형 마켓이 3개나 되지만 그 당시엔 콩나물과 두부를 사려고 해도 고속도로를 30분이나 운전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 인근에는 카울즈 마운틴 산과 호수가 보이는 부촌이 있다. K 사장님을 알게 되고 난 몇 달 후엔가, 사장님은 가게가 더 가깝고 차고 문이 3개인 이층집으로 이사했다. 그 부촌에도 K 사장님의 세탁소 분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K 사장님 부부가 매일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손님을 맞으며 부지런히 일하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부부는 이사 간 새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릴 때도 우리 부부를 초청해 주셨다.
가족 같은 우리 인연의 시작은 내가 그분의 늦둥이 막내딸 주말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시작됐다. 우리 집에서 피아노 기초를 가르쳐 주고 내가 교사로 일했던 교회의 주말 한글 학교에 그 애를 데리고 다녔다. 고인이 그토록 예뻐하던 귀염둥이 막내는 벌써 마흔이 넘었다. 고인은 은퇴 후 많은 나이에도 아내를 차에 태우고 신나게 여행을 다니며 운전을 즐겼다. 한국에 살 때는 서울 삼각지에서 약국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분은 우리 부부와 더 가깝게 지내길 원했지만 그렇게 못했다. 하지만 소소한 일에도 세심한 마음으로 나에게 따뜻한 칭찬을 해주곤 했다. 빈틈없이 깔끔한 성격의 사장님은 얼굴도 미남이지만 우리가 들릴 때면 냉장고에 여러 과일을 꺼내 대접하기를 좋아했다. 당뇨 약을 드시면서도 맛깔스러운 전통음식을 찾는 조금은 까다로운 분이었다.
꼼꼼한 성격의 남편과 함께한 고인의 아내는 늘 분주했다. 보수적인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59년을 함께 살았다. 나는 그런 그분이 존경스러워 형님이라 부르며 정이 들어갔다. 우린 가끔 서로의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내가 두 번째 책 출간 기념으로 우리 집에서 연 파티에 참석했던 형님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고백해 참석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K 사장님은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해내며 사업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말은 정성을 들여 코인 론드리를 만들어 아들에게 선물했다. 고인은 사업적인 두뇌도 뛰어났지만 기계도 잘 고치고 목수일도 척척 해냈던 열정적인 재주꾼 가장이었다.
2024년 연말인가 보다. 무서운 암 소식과 함께 뜻밖에 들었던 그분의 힘없는 목소리, 하느님이 부르시면 이젠 가야겠다던….
봄과 여름엔 우리 집에서 나온 과일이나 채소를 들고 찾아가면 집안으로 들어오라며 환영하셨다. 예고 없이 대문 초인종을 눌러도 언제나 반가워하던 부부. 부부는 동생 또래인 나에게도 항상 존칭했지만, 가족처럼 늘 편안했다. 전화로 안부를 드릴 때면 다정하게 받으셨고,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긴 세월 살아온 정이 두터운 이웃이었다.
고인은 주인이 함께 일해야 정원사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 덕에 그 집을 방문할 때면 정원 곳곳에 핀 꽃들을 즐겁게 바라보곤 했다. 주인아저씨의 손길이 멈춘 정원의 식구들도 당분간 슬프겠지.
지난해 봄, 군자란과 아마릴리스 꽃을 한 뿌리씩 얻어올 때가 고인과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삼키기가 힘들어 죽으로 연명한 탓인지 너무 여위었던 그 날의 뒷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그분이 주신 꽃을 바라보며 이웃의 따스한 정을 기억하리라. 하늘나라 성모 마리아님의 품에서 편히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