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문화산책]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기도

Los Angeles

2026.10.01 19:1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인류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수없이 많은 건축가가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해냈다.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안도 다다오, 프랭크 개리…,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숱한 천재들….
 
그 많은 건축가 중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단연 안토니 가우디(1852∼1926)다. 가우디는 인류 건축 역사에서도 두드러지는 천재 건축가다.
 
올해는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기가 되는 특별한 해다. 그의 100주기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고,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 언제 완공될지에도 큰 관심이 모였다. 이 기념비적 성당은 1882년 건축을 시작하며 10년 안에 완공할 계획을 세웠지만, 가우디 100주기인 올해도 완공에 이르지 못했다.
 
가우디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독창적인 건축물들 가운데 무려 7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방문해본 이들은 가우디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밀라 주택, 카사 바트요,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도시 전체를 채우고 있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위대한 존재감을…. 온 도시가 가우디 덕에 먹고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가우디 100주기를 추모하며 이렇게 말했다. “가우디의 작업은 혁신적이었고 건축적 풍경을 바꿔놓았으며, 바르셀로나를 모더니즘 건축의 세계적 기준으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 명소는 단연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다. ‘돌로 된 성경’이란 별칭이 붙어 있는 이 성당은 가우디의 기도요, 찬양이요, 신앙고백이다. 건축물로 표현한 성스러움,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감동…. 가우디는 설계와 공사에 종교적 신념과 철학, 예술혼, 모든 것을 갈아 넣었다. 물론, 이 성당 건축을 누구나 칭송한 것은 아니다. 가령, 작가 조지 오웰은 이 성당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 가운데 하나, 흉물스러운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거룩한 공간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천재 건축가의 기도, 찬양, 신앙고백을 들으며, 진한 감동에 젖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의 말년은 수도승에 가까웠다고 한다. 건축 이외의 세상 모든 것을 멀리하고, 오직 대성당의 건축에만 매달렸다. 1925년부터는 아예 온종일 공사장에서 보내고, 성당의 지하에서 숙식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며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신의 섭리는 자연에 들어 있다고 본 가우디의 신념대로 성당 기둥들은 숲을 형상화했고, 내외부의 모든 구조물에 가톨릭의 상징이 담겼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에는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공간을 건축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기둥은 나무줄기나 그루터기와 같고, 지붕은 산등성이와 산비탈과 같다.”-가우디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우디는 이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74세의 생애를 살았으니 당시로써는 단명한 것은 아니지만, 젊어서 가족의 대부분을 잃었고, 죽음도 눈물겹게 초라했다.
 
평소와 같이 바르셀로나 시내를 산책하던 가우디는 4차선 거리에서 달려오는 노면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초라한 행색 탓에 아무도 그가 가우디임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망한 모습이었다.
 
가우디의 시신은 성가족 대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