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58년만에 폐점을 도쿄 시부야의 세이부 백화점에 모여든 도쿄 시민들. 유성운 특파원
지난달 30일 오후 8시,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시부야의 세이부 백화점은 시민들로 인산인해였다. 1968년 문을 연 이 백화점이 58년 역사를 마감하는 날이었다.
특별 세일을 찾아온 사람들,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러 온 사람들,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려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모여들었다. 오후 9시 반, 문을 닫는 순간 백화점 앞에 선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감사하다’ 등의 팻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세이부 시부야점은 1970~80년대 개성 강한 디자이너 브랜드 열풍을 이끌던 곳이다.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패션과 예술, 새로운 생활양식을 소개했다. 이랬던 세이부 시부야점은 왜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을까.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폐점의 직접적인 원인은 토지·건물 권리자와 임대차 계약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그 배경에는 장기 실적 부진이 있다.
파르코·스크램블스퀘어·미야시타파크 등 쇼핑·식음·문화를 결합한 주변 상업시설과 경쟁이 심해졌고, 장기 임대차 계약을 확보하지 못해 입점 업체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도 약 967억엔이던 매출은 2025년도 약 400억엔으로 줄었다.
일본 백화점 매출은 1991년 정점을 찍은 뒤 40년간 하향세를 그려왔다. 자료 일본백화점협회
이는 세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1월에는 오사카부의 다카시마야 사카이점이 61년 역사를 마감했다. 2024년 7월 문을 닫은 기후 다카시마야는 기후현의 마지막 백화점이었다. 이 점포의 폐점으로 기후현은 야마가타·도쿠시마·시마네에 이어 백화점이 없는 네 번째 현이 됐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전국 백화점 매출은 1991년 약 9조7000억엔에서 2025년 약 5조7000억엔으로 약 42% 감소했다. 점포 수도 1999년 311개에서 지난해 176개로 줄었다. 산케이신문은 백화점이 한 곳만 남아 있는 현도 16곳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객 고령화까지 겹쳤다.
9월 30일 58년만에 폐점한 도쿄 시부야의 세이부 백화점. 유성운 특파원
그렇다고 일본에서 백화점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세탄 신주쿠 본점의 2025년도 총액 매출은 약 4249억엔으로 전년보다 0.9% 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서도 매출을 늘리는 점포가 있는 것이다.
김창주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이세탄에 대해 “고객 데이터, 앱, 카드 정보를 활용해 개별 고객을 정밀하게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 부유층뿐 아니라 30~40대 신부유층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세탄에서만 살 수 있는 독점 상품과 편집 매장, 유행을 선도하는 상품 구성력이 결합했다. 시장 전체가 줄어드는 가운데 경쟁력 있는 점포로 소비가 집중되는 셈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더현대 서울처럼 문화·체험을 앞세운 공간 전략에도 주목했다. 더현대 서울은 개점 당시 전체 영업면적의 약 49%를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 등에 배정했다. 상품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비워 고객이 머물도록 한 것이다. 5층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가 대표적이다.
6층 전시 공간 ‘알트원(ALT.1)’에서는 앤디 워홀 회고전과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등을 선보였다. 지하 2층에서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물건을 사러 왔다가 잠시 쉬는 데서 나아가, 전시와 팝업을 보러 백화점을 찾도록 방문 목적을 넓힌 것이다.
김 교수는 더현대 서울 같은 문화·체험형 공간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체류 경험이 실제 상품과 서비스 구매, 고객 충성도, 재방문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객을 불러들이는 데서 나아가 다시 찾아 구매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 5층 에픽서울에서 지난해 8월 열린 로스트아크 팝업 스토어. 사진 스마일게이트
한국과 일본의 백화점은 명품 수요를 흡수하는 구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백화점 안의 명품 매장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역할까지 하지만, 일본에서는 백화점 밖 대형 독립 매장으로도 수요가 분산된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루이비통의 매장 구성을 비교했다. 면세점을 포함하고 남성·신발 특화 매장 등을 합산한 집계에서 한국은 25개 중 21개(84%), 일본은 51개 중 38개(75%)가 백화점에 입점했다.
여기에는 매장 규모도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대형 백화점의 영업면적은 보통 2만~3만평이다. 반면 도쿄에서는 일부 대형점이 2만평 수준이고 다른 점포들은 그 절반 정도다. 브랜드가 확보한 공간이 작으면 상품 종류와 재고도 제한돼 고객이 외부 대형 매장을 찾을 이유가 생긴다는 분석이다. 같은 명품 소비 증가라도 한국에서는 대형 백화점 매출로 더 집중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백화점과 독립 매장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