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모레노 감독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레노호가 세계 48위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졸전 끝에 득점없이 비겼다.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이 이끄는 2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 평가전에서 0-0 무승부에 그쳤다.
모레노의 정식 감독 여부가 결정되는 9월~11월 A매치 6경기 중 3번째 경기다. 앞서 지난달 24일 에콰도르를 3-0으로 꺾었지만, 28일 우루과이에 1-4 완패를 당했고, 이날 베네수엘라와 비겨 1승1무1패에 그쳤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8위로 한국(32위)보다 16계단 낮은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28일 일본과 원정 평가전에서 1-2로 졌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한 팀이다.
후반 41분경 교체아웃돼 벤치에 앉은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은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축구화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분노의 축구화 패대기였다.
수비에서 고군분투하며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김민재는 경기 후 중계사 인터뷰에서 “반전이 필요한 경기였는데 결과를 얻지 못해 아쉽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포백 얘기보다는 다같이 싸워줘야하는데 안되고 있다. 수비수들을 보면 불쌍하다. 전체적으로 다 같이 싸우는 느낌이 없었다. 이런 경기면 7-0으로 이기든, 9-0으로 이기든 민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팀이 하나가 돼 수비해야하는데 그런 게 부족했다. 다같이 머리 처박고 열심히 해야할 것”이라고 작심발언했다.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손흥민이 베네수엘라 진영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전 우루과이전에서 압박과 뒷공간 침투에 쩔쩔맸던 모레노 감독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11명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강조했다.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가담하기는 했으나, 김민재 말처럼 팀이 하나가 돼 움직이지 못했다. 모레노 감독은 부임 후 3경기 연속 4-4-2 포메이션을 꺼냈지만, 중원싸움에서 또 밀렸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앞선 2경기를 건너 뛴 황인범(포르투)이 돌아와 박진섭(저장)과 중원에 배치됐으나 빌드업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4-4-2 포메이션은 4-2-3-1이나 4-3-3과 달리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이 아닌 2명 뿐인 치명적인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우루과이전처럼 오른쪽 미드필더에 배치된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 볼터치가 많지 않은 채 고립됐다. 소속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선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프리롤을 맡아 공격에 더욱 치중하던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에이스’의 영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3경기 연속 투톱 공격수로 내세운 손흥민(LAFC)과 오현규(베식타시)는 중원 숫자가 모자라다보니 최전방에서 중앙으로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2일 울산 남구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경기, 대한민국 이강인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반전이 0-0으로 끝난 뒤 이강인은 경기가 잘 안풀린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앞서 2경기에 하프타임 라커룸 토크로 경기양상을 바꿨던 모레노 감독은 후반 22분 오현규와 김민수를 빼고 이동경(울산)과 김태현(전북)을 넣었다.
이강인을 중앙으로 옮기는 4-3-3 내지 4-2-3-1 포메이션 형태로 전술 변화를 줬다. 후반 27분 테오 퀸테로의 슈팅이 한국 선수 맞고 굴절돼 골대를 강타했고, 이어진 슈팅은 골키퍼 송범근(전북)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슈팅 전개 과정만 보더라도, 페널티 박스 인근에 한국 필드 플레이어 9명이 있었는데도 김민재 혼자서만 2차례나 몸을 던져 수비했다. 나머지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봤다.
김승규(도쿄) 대신 골문을 지킨 송범근의 여러차례 선방이 없었다면 패할 뻔 했다. 수비수 김민재와 조현택(울산)이 헌신적으로 수비했는데, 반대로 상대가 그만큼 위협적이었다는 의미였다. 베네수엘라는 유럽파 케빈 켈시(레인저스), 글라이커 멘도사(샤흐타르 도네츠크), 헤수스 라미레스(초룸)를 앞세웠다.
후반 33분 정승원(서울) 등 4명을 바꿨다. 후반 45분 이동경의 슈팅이 골키퍼에 막혔고, 결국 득점을 뽑아내지 못했다. 감독 전술도 문제를 보였지만, 선수들 역시 상대와 일대일 싸움에서 밀렸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모레노 감독이 경기 시작을 앞두고 생각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
한준희 해설위원은 “기본 4-4-2이지만 사실상 4-2-4 포메이션으로 박진섭이 내려오는 구조인데, 후방빌드업에서 문제를 보였다. 패스도 정확하지 않을 뿐더러, 볼을 받아주는 움직임, 위치선정도 기민하게 형성하지 못했다”며 “투 미들(2명의 미드필더)’ 싸움에서도 앙헬 에레라(레알 소시에다드)와 크리스티안 카세레스(툴루즈)에 크게 밀렸다. 중원 싸움이 버거워지니 시간이 갈수록 뒤려밀려 내려 설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이어 한 위원은 “통계상 우리가 가장 뚜렷하게 밀리는 부분이 상대 박스 내 터치 횟수였다. 그만큼 우리가 신속하고 세밀하게 박스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의미”라며 “한국 공격은 단조로운 크로스가 올라가거나, 상대가 박스 안에 자리잡은 뒤 벽을 때리는 형태가 됐다. 가장 바람직한 공격장면이 후반 추가시간에야 이동경으로부터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한 위원은 마지막으로 “모레노 감독도 이제 한국축구 현실과 선수들에 대한 파악이 어느정도 되어야할 때가 됐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한국 선수들 성향과 능력에 비춰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개선책에 접근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3만5991명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력이었다. 모레노 감독은 11월까지 A매치 3경기를 더 치른다. 결과와 내용에 따라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데 경고등이 켜졌다. 다음 경기는 6일 용인에서 열릴 우즈베키스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