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이 전쟁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첨단 정밀유도무기와 날로 진화하는 드론 기술이 현대 전장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는 지속 가능한 ‘탄약 공급’임이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탄약 보급이 전쟁 지속의 핵심 문제로 대두했고,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대규모 공세를 시사했지만, 탄약이 발목을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포병이 러시아 목표를 향해 보다나 자주포를 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탄약 공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됐다. 로이터=연합
최근 미 국방부 선임감찰관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Lead Inspector General Report to the United States Congress)는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약 4개월간 에릭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OEF)에 투입된 예산은 총 334억 달러(약 45조 원)이고, 이 중 무려 66.7%인 223억 달러(약 30조 원)가 탄약 조달에 사용됐다. 그리고 국방부 군수차관실이 “OEF로 탄약의 전략적 재고 부족이 발생했고, 탄약 재보급에서 방위산업 기반의 심각한 병목 현상이 드러났다”고 인정해 탄약 재고 위기가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탄약 부족은 공격용보다 방공 요격용 탄약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초기부터 미군의 핵심 탄약 수준을 추적해 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7월 27일 분석에 따르면, 요격용 탄약 부족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핵심 방공 자산인 패트리엇(PAC-3) 미사일의 전쟁 이전 재고는 2330발이었지만, 현재는 759~827발로 65~68%를 소모했다. 사드(THAAD) 미사일의 재고는 전쟁 이전 452발에서 현재 234~278발로 39~48%를 소모한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탄약 위기 근저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대규모 비축보다 필요량을 ‘적기 생산(Just-in-Time)’하는 방위산업 정책 도입으로 단기간에 생산 라인을 급속히 늘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또한 첨단 유도무기에 사용하는 고성능 센서·로켓 모터·특수 추진제 등의 수급을 담당하는 공정과 공급망의 극심한 병목 현상으로 원활한 탄약 생산이 제한받고 있다. 반면, 인명 중시 사조의 확산으로 전쟁의 양상이 병력과 재래식 화력 중심에서 정밀타격과 미사일 방어 위주로 전환하며 정밀유도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탄약 위기를 한반도 현실에 대입해 보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군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정밀유도무기 중심의 ‘한국형 3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의 핵심 전력인 패트리엇·천궁Ⅱ 요격미사일과 킬체인(Kill Chain)·대량응징보복(KMPR)의 핵심 전력인 현무 계열 지대지 미사일·타우러스 등 공대지 유도탄의 실제 비축량은 개전 후 1~2주면 바닥이 드러날 수준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는 곧 탄약 위기가 우리에게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북한이 ‘썩어 쏘기’ 전술을 사용할 경우 상황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북한이 개전 초기 수도권으로 미사일·장사정포·드론 수천 발을 섞어 제파식(梯波式)으로 공격하면, KAMD의 요격용 탄약은 며칠 내 고갈할 수 있다. 요격용 탄약의 고갈은 곧 ‘방공망 공백’으로 이어져 북한의 핵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정밀유도무기의 국산화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방위사업청의 방산물자 국산화율 통계에 따르면, 완성품 기준으로 국산화율은 약 89%에 달하지만, 정밀유도무기에 탑재되는 고성능 센서·고체 추진제 화약류·정밀 제어장치 등 핵심 구성품의 실제 기술 자립도는 여전히 40~60%대에 머물러 해외 의존도가 높다. 글로벌 공급망이 단절될 수 있는 전시 상황에서 핵심 구성품의 수입이 막히면 유도무기 생산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란의 자폭 드론인 샤헤드-136. 제작비가 5000만원 정도인 이 드론을 격추하려고 미국은 발당 50억원이 넘는 패트리엇 미사일을 발사해야만 했다. AP=연합
전쟁은 장군들의 화려한 전략·전술만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탄약고의 바닥이 드러나고 군수 공장의 굴뚝이 멈추는 순간, 아무리 훌륭한 군대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미 국방부 선임감찰관 보고서가 폭로한 탄약 고갈의 민낯은 그동안 잊고 있던 작전지속지원의 중요성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전투기·함정·전차 등 플랫폼 선호 경향으로 탄약보다 대형 플랫폼 확보를 우선시해 온 우리 군의 통례를 고려했을 때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 핵심 탄약 비축 목표의 상향 조정과 더불어 생산 탄력성 확보가 시급하다. 최근 전쟁에서 정밀유도탄의 폭발적인 수요를 고려했을 때 한반도 유사시 수요는 기존 예상치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따라서 주요 정밀탄약의 비축 목표를 대폭 상향 조정하고, 방산 계약 제도의 개선으로 전시 전환 즉시 생산 라인을 확대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소재·부품 자립도 향상을 통해 해외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교란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동맹 및 우방국들과 군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시 급격히 증가하는 탄약 소요를 자체 비축 및 생산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동맹국인 미국의 탄약 비축분을 신속히 인도받는 ‘한미 연합 탄약 스와프’ 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미국 주도의 ‘동맹국 공급망 통합’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 국방부는 탄약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의 탄약 재고와 연계하거나, 동맹국의 우수한 방산 인프라를 활용해 공동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유력한 해법으로 검토하고 있다.
셋째, 작전 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탄약 소모를 줄여야 한다. 방공망 무력화를 위한 ‘썩어 쏘기’ 전술이 이미 보편화했지만, 우리 군의 방공작전지휘체계는 아직도 육·해·공군으로 분리돼 있고, 저가의 장사정포·드론에도 수십억 원짜리 유도탄으로 대응하는 ‘가성비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육·해·공군 방공작전지휘체계를 ‘AI 기반 지능형 통합지휘체계’로 단일화해 AI가 실시간으로 최적의 요격 수단을 배정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가성비 딜레마 극복을 위해 1회 발사 비용이 수천 원에 불과한 고출력 레이저 무기나 저가형 대드론 요격드론 체계를 빠른 시기에 전력화해야 한다.
미국 육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이란 전쟁에서 재고의 절반 가까이를 쐈다. 미 육군
현대전에서 탄약 고갈은 단순한 보급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중동에서 천궁Ⅱ의 활약과 K-방산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 미국과 같은 탄약 위기가 현실화할 우려는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