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수를 57개로 특정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에는 북한이 “핵미사일 112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해 “거대 핵보유국 지도자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한 뒤 곧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거론하며 “핵미사일을 112개 가진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 게 좋다”고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북한을 합법적 핵보유국과 같은 위치에 놓고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3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밴데일리아 버틀러 고등학교에서 진행한 지원 유세 연설에서 관세 부과로 인해 “수조 달러가 들어오고 있다.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 몇 배나 많은 규모이며, 중국이 받아본 것보다도 몇 배 많다”며 시진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누군가 ‘왜 시진핑 주석에게 친절하게 대하느냐’고 했다. 거대한 나라, 거대한 핵보유국의 지도자들과 잘 지내는 게 좋은 일 아닌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시진핑이 “비행기에서 내려서 ‘(당신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저는 김정은과 잘 지낸다”며 김정은의 이름을 꺼냈다. 트럼프는 “누군지 아시죠? 북한이다. 핵미사일 112개를 가진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 게 좋다”고 말한 뒤 곧바로 “하지만 차이가 있다. 이란은 핵미사일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8월 북한에 대해 “핵무기 57개를 갖고 있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연구 기관에서는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을 꾸준히 추산해 발표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들어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가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김정은과 대화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트럼프가 이번에는 중국 이야기를 하다 ‘거대 핵보유국’이라는 키워드를 꺼낸 뒤 ‘김정은’으로 넘어가 ‘핵미사일 112개’까지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보여 더 주목된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인정하는 합법적 핵보유국 5개국 중 하나다. 그런 중국을 핵보유국으로 언급한 뒤 불법적으로 핵을 개발한 북한의 핵 보유량을 거론한 건 NPT 체제와 무관하게 북한을 그저 ‘핵무기를 가진 국가’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트럼프가 “거대 핵보유국 지도자들과 잘 지내야 한다”며 지도자를 복수(leaders)로 언급한 것도 눈길을 끈다. 시진핑만 염두에 둔 게 아닐 수 있어서다.
지난번 57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특정한 112개의 근거도 확실치는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이미 조립한 탄두와 생산 가능량을 합쳐 최소 90개로 추산했다. 다만 연구기관에 따라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로 생산할 수 있는 탄두 수를 100개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안규백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8월 북한의 핵무기가 57개라는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80~120개로 추산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SIPRI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핵탄두 추정치가 약 90개, 파키스탄이 약 170개다. 인도는 약 190개다. 트럼프의 112개 발언을 토대로 단순 계산하면 이는 이미 이스라엘의 보유 추정량을 웃돌고, 파키스탄의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에도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을 가져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내가 있는 한 그는 괜찮을 것이다. 그는 나를 존중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꽤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도 관세 예찬론을 폈다. “여러분의 주, 또 모든 주가 호황(boom)”이라며 “내가 사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 관세 덕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중국, 일본, 한국, 캐나다 등 온갖 곳이 수년 동안 우리를 상대로 관세를 써왔고, 이를 이용해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한국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어 “예전에는 공장을 다른 나라에 지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아무 비용 없이 물건을 여기로 보냈다”며 “우리는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50%, 200%, 250%, 30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이곳에 공장을 짓고 있다. 모두 아주 성공적”이라면서다.
그는 또 “사람들은 물가가 오른다고 말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거의 없다. (관세로) 수조 달러를 벌어들였다”고도 말했다. 이를 재원으로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경우 모든 미국 성인에 5000달러씩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다시 확인했다.
오하이오는 트럼프가 지난 1일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시작한 뒤 처음 찾은 격전지다. 오하이오는 JD 밴스 부통령이 취임 전까지 상원의원을 지낸 곳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온 지역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서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시에나대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셰러드 브라운 후보(49%)가 공화당 존 허스테드 현 상원의원(46%)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앞섰다.
허스테드도 이날 유세에 함께 했다. 트럼프는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치켜세우며 “민주당이 승리하면 1929년과 같은 경제공황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유치를 통해 지역이 부유해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며 허스테드가 당선되면 데이터센터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그의 전기요금 보호 법안에 “24시간 안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모두 가짜 뉴스로 폄훼해온 트럼프는 “나가서 투표하라. 그러면 우리는 크게 승리할 것”이라며 지지자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또 민주당 후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이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급진화된 미치광이들과 악당들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에 있다. 미합중국은 절대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