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영화 ‘암살자(들)’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영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출연 배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기업을 향한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은 매장에서 배우 유해진이 등장하는 포스터 등 광고물을 순차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버거킹 관계자는 “유해진은 가을 신제품 광고에 한정된 단발성 모델로, 방송과 온라인 광고를 예정된 일정대로 9월 말에 종료하면서 매장 광고물도 철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유해진이 모델로 등장한 버거킹 영상 광고의 한 장면. 그가 출연한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버거킹을 향한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버거킹 유튜브 캡처
그러나 한 업계 관계자는 “유해진과 버거킹의 모델 계약 기간이 일주일 이상 남아 있고, 방송·온라인 광고 캠페인이 끝나더라도 통상 매장 광고물은 며칠 더 두는 편”이라며 “이번 논란을 의식해 이번 주말까지 서둘러 철거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버거킹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버거킹은 2024년 이후 TV와 온라인에 송출한 광고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지만, 유해진이 등장한 광고 영상은 노출되지 않고 있다. 앞서 모델로 활동했던 배우 이정재의 광고 영상이 남아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시 게시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키움증권은 지난 2일 유해진을 모델로 한 광고 캠페인을 종료했다. 회사 측은 예정된 일정에 따른 것이란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암살자(들)’ 논란 영향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배우 이민호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던 치킨 프랜차이즈 BBQ도 선을 그었다. BBQ 관계자는 “이민호는 지난 8월 말 계약이 종료돼 현재 광고 모델이 아니다. 당시에도 국내가 아닌 중국시장을 겨냥해 기용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발 빠르게 대응하는 배경엔 불매 운동 확산이 있다. 온라인상에선 ‘암살자(들)’에 출연한 배우를 모델로 기용한 기업들의 목록이 퍼지고 있다.
버거킹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올해 광고 영상들. 유해진이 등장한 영상은 보이지 않는다. 버거킹 홈페이지 캡처
특히 주연 배우인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 중인 버거킹을 향한 불매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엔 “모델 바꾸기 전까지 절대 안 먹겠다” “버거킹 상품권 환불 접수했다”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또 버거킹 고객센터에 모델 교체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앱 탈퇴를 인증하는 게시물도 올라오고 있다.
버거킹의 버거 먹방 영상을 올린 유튜브 영상에도 비판 댓글이 달리고 있다. 앞서 버거킹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유해진 광고에 비판 댓글이 쏟아지자 “브랜드의 SNS는 정치적 논쟁의 장소가 아니다”라며 댓글 창을 닫았다.
불매 운동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대학생 박모(24)씨 “출연 배우들도 사전에 작품 내용을 알고 스스로 선택한 만큼 책임질 부분은 져야 한다”며 “불매 운동은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소비자의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김모(25)씨는 “작품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배우를 향한 지나친 공격이나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지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출연 작품이 논란에 휩싸이면 해당 배우를 모델로 쓴 기업도 불매 운동 등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정치·사회적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델 계약을 맺을 때 위약금 청구 사유에 개인적인 문제 뿐 아니라 출연 작품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까지 명시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