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첫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한ㆍ미 안보협상 재개에 속도를 내려던 정부 외교ㆍ안보라인에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가 또 다른 ‘통상 암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투자를 확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40억달러 투자를 기정사실화한 데 이어 추가 압박까지 이어가면서, 가까스로 풀린 통상 갈등이 다시 안보협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4일 통화에서 “지금 이런 논쟁이 시작된 걸 보면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미 관계를 잘 아는 또 다른 소식통은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이 한국이 알래스카 LNG 투자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대미투자 발표에 포함시킨 게 성급했던 것 아니냐고 묻자 “성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더 많이 청구하면 된다”고 했고, 아직 합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곧 합의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릴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같은 날 트루스소셜에는 “한국과의 딜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며 대미투자 팩트시트에도 없는 84억달러 규모 원유회수증진(EOR) 사업까지 한국과의 합의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부는 “양국 간 합의된 것은 공동 팩트시트와 보도자료에 명시된 것이 전부”라며 미국 측에 경위 파악을 요청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8월 26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 월라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제조업 파트너십 MOU 체결식'에 참석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대미 투자 첫 프로젝트 발표 직후까지만 해도 정부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정부는 투자 협상 진전을 고리로 그간 지연돼온 한ㆍ미 안보협상을 10월 중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미 전략투자 관련 협의 진전으로 공동 설명자료 전 분야의 후속협의 추진 동력을 마련했다”며 핵추진잠수함, 우라늄 농축ㆍ재처리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한ㆍ미 간 협의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외교부 고위당국자도 알래스카 LNG가 다시 한ㆍ미 간 쟁점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안보협의를) 조만간 다시 가동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급적 빨리 협상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LNG를 둘러싼 한ㆍ미 간 온도 차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대미 투자 첫 프로젝트 발표 때부터 불거졌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사업을 발표하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한국이 54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한ㆍ미 공동 팩트시트에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 충족을 조건으로 사업 검토에 착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산업통상부도 다음날 “투자 여부나 규모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