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시니어의 건강한 노후와 존엄한 삶을 위한 통합 돌봄을 이끌고 있는 K-day PACE 임영빈 원장.
87세 아내와 92세 남편. 두 사람 모두 치매를 앓고 있지만 자녀들은 타주에 살고 있다. 낮에는 간병인이 찾아오지만 밤이면 두 사람만 남는다.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한 분이 넘어지면 누가 알 수 있을까.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한인 시니어 통합 돌봄 프로그램 'K-day PACE'를 이끄는 노년내과 전문의 '임영빈 박사'가 진료실 밖의 '돌봄'까지 고민하게 된 이유다.
그가 처음부터 노년내과 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위장내과 전문의인 아버지 임대순 박사의 뒤를 이으려 했지만 UCLA 내과 레지던트 3년 차에 류마티스 관절염이 찾아왔다. 관절 통증으로 내시경 시술을 지속하기 어려워지면서 진로를 다시 고민해야 했다.
그때 선택한 분야가 노년내과였다. 질환 치료에만 머물지 않고 식사와 수면, 운동 등 생활 전반과 기억력·인지기능의 변화까지 세심하게 살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데 중점을 두는 분야다.
"어깨가 아픈 환자라면 통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과 걸음걸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까지 살핍니다. 질병 하나가 아니라 한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는 거죠."
스탠퍼드 대학병원에서 노년내과 전문의 과정을 밟으며 그는 환자의 삶까지 살피는 의료를 배웠다. LA 한인타운으로 돌아와서는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치매가 진행돼도 곁에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자녀들이 멀리 살아 중요한 치료 결정을 함께 고민해 줄 이가 없는 시니어들을 적지 않게 만났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스탠퍼드에서 경험한 통합 돌봄 프로그램 'PACE(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를 떠올렸다. 의사와 간호사, 재활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이 한 팀이 돼 고령자의 의료와 일상을 함께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인 환자를 기존 PACE에 연결해 보기도 했지만 언어는 물론 음식과 문화까지 낯설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한인타운에도 꼭 이런 곳이 있어야 한다.'" 이후 약 3년간의 준비를 거쳐 한국어와 한인 문화를 기반으로 한 K-day PACE가 탄생했다.
임 박사는 PACE를 "의료진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플 때만 만나는 의료가 아니라 식사와 약 복용, 낙상 위험 등 일상의 작은 변화까지 의료진과 돌봄팀이 지속적으로 살핀다는 의미다.
그 돌봄에는 가족도 포함된다. 치매 부모를 돌보다 지친 자녀, 멀리 떨어져 살며 부모를 걱정하는 가족이 짊어진 무게까지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다. 그가 K-day PACE를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앞으로는 더 많은 시니어를 돌볼 수 있도록 공간을 확장할 계획이다. PACE가 한인사회에서도 노년 돌봄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것이 임 박사의 바람이다.
의료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노년의 빈자리, 가족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순간까지 곁을 지키는 것. 임 박사가 K-day PACE를 통해 만들어가고 싶은 '또 하나의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