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추석이나 가을 시제 때면 문중 후손들은 어르신들의 진두지휘로 조상님 산소를 찾아 산비탈을 오른다. 반세기 전만 해도 흰 두루마기 행렬이 이 산줄기 저 산줄기에서 해 질 녘까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나도 중학생 때 산 너머에 있는 증조할머니 산소로 제주가 담긴 주전자를 들고 할아버지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전설 속 풍경이 된 고향 마을. 장날 신작로에는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이 걸어가시고 소 구루마들도 지나갔다. 읍내 장 골목은 막걸릿잔을 서로 권하시는 할아버지들과 허리에 끈을 묶은 할머니들이 난전을 오가시느라 늘 번잡했다. 섬유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고향 할아버지들이 서양식 옷들을 걸친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나의 종조 할아버지도 겨울에는 흰 솜바지 저고리 위에 조끼를, 여름에는 삼베, 모시 적삼과 바지를 입었고, 나들이 때는 짙은 회색의 두꺼운 두루마기 혹은 흰 옥양목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그분들 복장은 엄격하고도 철저했다. 할머니들도 박수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옥양목 한복을 주로 입으셨는데, 어머니들은 무늬 있는 나일론 한복 차림으로 나섰지만 집 안에서는 흰 광목 앞치마를 입었다. 이웃에 초상이나 환갑, 혼례 등의 큰일이 있으면 여인들은 흰 사각 행주치마를 두르고 그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때는 이불호청도 모두 흰색이어서 흰 면섬유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여인들의 삶은 마음을 다스리던 고행의 길이었으리라. 흰 빨랫감들은 냇물에 씻은 후 잿물에 푹 삶아 햇빛에 말려야 했다. 그리고 풀을 먹여서 어느 정도 말랐을 때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리며 손질했다. 세탁기도 세제도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비비고 문질렀다. 그런 광목과 옥양목은 내 마음에 강렬한 빛으로 살아있다. 살얼음 밑을 흐르는 맑은 물로, 따사로운 가을볕으로, 서늘한 다듬이 소리로 마음에 스며드는 흰 빛이다.
아기들을 키울 때는 면 종류의 소목천 기저귀를 사용했다. 씻고 푹 삶아서 몇 번이나 헹구어 바람에 말렸다.
지금 우리 집의 흰색 면 수건들 본래 색을 잃어가고 있다. 20대 때 꽃을 달고 겸연쩍게 서 있던 스승의 날 행사, 말썽꾸러기 학생들이 노랑 빨강 가발을 쓰고 흥겹게 응원하던 체육대회, 작고하신 원로 시인들과 함께 한 한국시인협회 세미나, 재경여고총동창회, 윷놀이 판이 벌어진 외갓집 입택 날 등등에도 수건은 등장했다. 이들 수건에는 몇 년 몇 월 며칠의 숫자가 선명하다. 그뿐 아니라. 12년 전에 시아버지께서 한아름 주신 수건들에도 사연이 있다. 이 수건들을 보면 멋진 교사였던 시아버지님의 모습이 선연하다. 표백제를 넣고 하얗게 삶아 햇빛에 널면 모든 시간이 탈색될까, 사오 십 년의 하늘을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