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손흥민(34, LAFC)은 병역 특례가 절실했던 순간에도 '군 면제'보다 태극마크의 의미를 먼저 말했다. 3년 전 이강인(25, 파리 생제르맹) 역시 "(군대는)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야 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연이어 경솔한 행동으로 논란을 산 몇몇 후배들이 배워야 할 자세다.
손흥민은 과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 주장으로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한국은 결승에서 일본을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으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손흥민 개인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우승이었다. 그는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특례 대상이 됐고, 선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병역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그 덕분에 토트넘 홋스퍼에서 커리어를 이어갔고, 10년 동안 몸담으며 프리미어리그의 레전드로 등극했다.
그러나 당시 우승 직후 손흥민이 가장 먼저 강조한 건 병역 혜택도 프리미어리그 커리어도 아니었다. 그는 "그런 것(군 면제)보다 우승하러 온 대회고, 2연패 하러 온 대회다. 선수들한테도 그런 거를 제일 먼저 이야기해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OSEN DB.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숨기지 않았다. 손흥민은 "대한민국 경기에 나가는 것을 상당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 국민들께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을 생각하고 있다"며 "태극기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애국가만 나와도 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밝혔다.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군 문제가 걸린 대회였지만, 손흥민의 입에서 먼저 나온 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기쁨이 아니었다. 우승과 태극마크,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이었다.
5년 뒤 금메달을 목에 건 이강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강인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개최)에 출전해 한국의 대회 3연패에 힘을 보탰다. 한국은 결승에서 다시 일본을 2-1로 제압하며 정상에 올랐다.
이강인도 병역 혜택이 선수에게 유리한 부분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해외와 국내에서 뛰는 선수 모두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데 더 편리한 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병역의무 자체를 특별한 부담이나 짐덩이처럼 표현하지 않았다.
이강인은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야 되는 거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이고 부담감도 없었다. 저는 따로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똑같이 땀 흘렸지만, 메달을 얻지 못한 다른 종목 선수들의 노력까지 챙겼다. 이강인은 "메달 못 딴 선수들도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 너무 멋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우승과 병역 혜택만 바라보는 대신 대한민국을 대표해 같은 무대에서 싸운 선수들의 노력과 태극마크의 의미까지 돌아봤다.
그리고 3년이 흘러 후배들도 손흥민과 이강인의 금메달 계보를 이었다.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지난 3일 남자축구 결승에서 개최국 일본을 1-0으로 꺾었다. 한국 축구는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4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부 선수들의 병역 관련 발언과 행동이 논란을 불러왔다.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과거 선배들과는 사뭇 다른 말들이 나왔기 때문.
[OSEN=도요타(일본), 박준형 기자] 미쳤다! 엄지성(24, 스완지 시티)이 결승골로 한국축구를 살렸다.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U23 남자축구대표팀은 3일 오후 7시 30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6 결승전에서 엄지성의 결승골이 터져 숙적 일본을 1-0으로 제압했다.경기종료 후 양민혁이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2026.10.03 / [email protected]
양민혁은 경기 후 트로피 대신 메달을 받은 기분에 관한 질문을 받자 "사실 이런 메달이냐 트로피냐는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저희가 보상받는 건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으니까, 그것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던 것 같다. 사실 트로피나 메달에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물론 메달과 트로피 가운데 무엇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을 거다. 하지만 "군 면제 하나만 보고 경기했다"는 표현만 너무 크게 남았다. 결코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다.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주장 이기혁도 병역 문제를 대하는 표현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귀국 후 입대까지 9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힌 뒤 메달이 무겁냐는 물음에 "군대 안 갑니다"라고 외쳤다. 여기에 박승수도 팬에게 받은 '전역모'를 쓰고 찍은 기념사진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군 문제를 해결한 선수들의 기쁨과 안도감은 이해할 수 있지만, 분명 옳지 못한 표현 방식이었다. 함께 뛴 엄지성처럼 병역 특례의 행복보다는 금메달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를 강조해야 했다. '4골 4도움'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엄지성은 "병역 문제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모든 선수들이 금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로 모였다. 고생을 많이 했다. 결과를 얻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양민혁과 이기혁, 박승수는 줄줄이 사과를 전했다. 대한축구협회까지 나서 고개 숙이며 대표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소양과 윤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장은 이미 걷잡기 어려울 정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역특례 제도 개정을 주장 중이며 이웃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영국, 베트남, 홍콩,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다. 한국만의 특수성이 겹친 이례적인 논란인 만큼 집중 조명 중이다. 국위선양을 이유로 혜택을 받았는데 정작 국제망신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일본 '론스포'는 "칭찬은커녕 비난 쇄도!"라며 "금메달 특전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된 일부 선수들이 경기 후 '병역 면제라는 보상. 그것만 바라보고 뛰었다', '군대에 가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한국 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본을 1-0으로 꺾고 대회 4연패를 달성한 한국 대표팀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라고 전했다.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라는 결과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선수들이 쏟은 땀과 노력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따낸 금메달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국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까지도 국가대표의 몫이다. 병역 혜택이 누구보다 절실했던 손흥민과 이강인은 이를 알고 있었다. 이번 후배들의 행동이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