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골프를 지탱하는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왼쪽)과 최경주. 정 회장이 후원자로 나선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올해로 11회째를 맞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 남자골프의 ‘든든한 버팀목’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과 ‘탱크’ 최경주가 지난 3일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이 열리는 경기도 여주 페럼클럽에서 만났다.
최경주는 “뒤에서 묵묵히 도우시겠다면서 시상식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회장님이 인터뷰를 하시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대회가 올해로 11회째를 맞았다. 지난 10년 동안 인터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후원사 대표로서 인터뷰 하나는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를 더는 외면하기 어려웠다”며 멋쩍게 웃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경주의 이름을 건 대회가 새 후원사를 찾지 못해 존폐 기로에 섰던 때다. 정 회장은 “현대 유니콘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어 맡았던 넥센 히어로즈 후원도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야구 말고 다른 종목 후원을 알아보던 중에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이 없어질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했다”고 했다. 최경주는 “딱 한 번 뵌 회장님이 대회를 후원해 주시겠다고 해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곱째 아들인 정 회장은 재계에서 소문난 야구광이다. 중앙고 시절부터 동대문야구장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모교를 응원했고,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야구협회장을 지냈다.
골프와는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학 시절 인연을 맺었다. 정 회장은 “학교 근처에 퍼블릭 골프장이 많았다. 유학생들과 중고 골프채를 사서 처음 필드에 나갔다”고 했다. 이어 “아버님과도 자주 라운드를 했다. 뉴코리아나 금강이 단골 골프장이었다. 아버지께서 ‘몽윤이는 성격이 침착해서 그런지 헤드업을 안 한다’고 칭찬하실 때면 참 기분이 좋았다”고 떠올렸다.
현대해상이 후원을 맡은 2016년부터 이 대회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회는 ‘선수 퍼스트’ 운영으로 유명하다. 선수들에게 연습 시간을 최대한 주려고 프로암을 열지 않는다. 숙식은 무료로 제공하고, 총상금 이외의 예비비(4500만원)를 마련해 컷을 통과한 61위 이하 선수들에게 균등 배분한다.
최경주는 “미국 메이저대회를 빼면 프로암을 하루도 하지 않는 대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후배들이 ‘선배님, 이렇게 혜택이 많아도 됩니까’라고 되물을 정도”라며 웃었다. 정 회장은 “VIP를 위한 행사인 프로암을 하지 않으니 주변에서 아쉬운 소리도 한다. 그래도 다른 이유는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 페럼클럽에서 선수들이 마음껏 연습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남자골프는 위기다. 대회는 갈수록 줄고, 대기업 후원도 하나둘 끊기고 있다. PGA 투어 통산 500번째 출전을 앞둔 최경주는 “결국 경쟁력이 중요하다. 우리 선수들이 해외에서 치열하게 싸우려면 골프장마다 유망주 한 명씩 키운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전국 500여 개 골프장이 그렇게만 도와주면 골프 저변이 달라질 것이다. 기업 후원도 당연히 절실하다”고 했다.
정 회장은 “어렵더라도 한국 남자골프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이 대회를 끝까지 열겠다”고 화답했다. 곁에서 듣던 최경주가 한마디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저도 계속 나오려면 팔굽혀펴기를 더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