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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바가지

Los Angeles

2026.10.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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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저는 바가지 안 긁어요.” “그런 여자는 이 지구에 없어요.”
 
얼마 전 S 선생님과 카톡을 나누다 ‘바가지’라는 말이 화제에 올랐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의 대답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가지’라고 단정하는 사람은 정작 말하는 내가 아니라 듣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남편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결국 ‘바가지’가 된다.  
 
바가지는 참 억울하겠다. 물을 퍼 담고, 쌀을 씻고, 때로는 빨랫감을 담아두는 등 쓰임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바가지를 그리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바가지를 긁는다’, ‘바가지를 썼다’, ‘깨진 바가지’에 이어 ‘욕도 바가지로 먹는다’는 표현까지 있다. 바가지가 들어간 말에는 불평과 손해, 쓸모없음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따라다닌다.  
 
어쩌면 사람도 바가지와 닮았는지 모른다. 담긴 것에 따라 흘러나오는 것이 달라진다. 마음에 불평을 담고 있으면 작은 일에도 불평이 새어 나오고, 감사와 배려를 담고 있으면 같은 상황에서도 따뜻한 말이 건너간다.  
 
아버지를 따라 약수터에 갔던 기억이 난다. 산자락에 자리한 약수터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차례가 오면 긴 손잡이가 달린 공용 바가지로 약수를 퍼마셨다. 아버지는 등에 지고 온 물통을 내려놓고 그날 마실 만큼만 물을 채우셨다. “너무 많이 가져가면 운동 삼아 또 안 오게 된다.”
 
여러 사람의 손과 입이 닿는 공용 바가지를 굳이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거창한 말보다 이런 소소한 생활 속에서 내게 삶의 지혜를 보여주셨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바가지는 약수터의 바가지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집에 공양을 받으러 온 스님에게 엄마가 하던 대로 쌀을 퍼드렸다. 바가지가 젖어 있었던지 쌀알이 군데군데 달라붙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두지 않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긁어 스님의 보따리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두고두고 나를 칭찬하셨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나는 무엇을 퍼내고 있을까.  
 
살다 보면 마음에도 찌꺼기가 쌓인다. 서운함과 오래된 미움 같은 것들이다. 그대로 두면 어느새 말이 되어 흘러나온다. 같은 말도 누구에게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잔소리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바가지보다는, 필요한 것을 담아 말없이 건네는 바가지이고 싶다. 내 안의 바가지에서는 오래도록 소리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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