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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던 블랙요원, 北서 살아왔다…25년만에 밝힌 피랍 전말

중앙일보

2026.10.0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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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북 공작사 초유의 사건

」

" 형님, 그만 가볼게요. "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 순간이었다. 문밖에 대기하던 5~6명의 괴한이 난입했다. 권총과 몽둥이를 든 괴한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공수여단 등에서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정구왕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권총 손잡이로 머리통을 가격당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1998년 3월 13일 금요일 오후 10시쯤 중국 단둥. 정구왕이 숙소 겸 사무실로 쓰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구왕(65)은 1년 반 전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으로 밀파됐다. 북·중 접경지에서 대북 정보 수집과 공작 수행이 임무였다. 그날 함께 있던 남자는 장세영(당시 30세)이란 중국 동포였다. 정구왕이 공작원으로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인물이었다.

정구왕은 북한 해군에 건넬 뒷돈 일부를 자신의 공작금에서 빼내 대주었다. 그런 대가로 장세영은 북한 해안경비대의 동향을 자세하게 전했다. 북한 해군 수뇌부가 귀순할 뜻을 비쳤다는 첩보를 전해, 정보사 본부와 협의하며 귀순을 유도하는 작전에 착수하던 시기였다.

현역 중령 공작관의 북한 피랍
이튿날 새벽녘,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액자에 담긴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이었다.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두 무릎은 끈에 묶였다. 괴한 중 한 명이 웃으며 “너 안기부 끄나풀이지”라고 물었다. “아니다”고 답했다. 더는 대화가 없었다. 비포장도로를 5~6시간쯤 달렸다. 차 밖으로 ‘박천’이라고 쓴 한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1998년 3월 북한 괴한들을 정구왕의 자택으로 이끈 장세영. 정구왕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사진 뒤에 신상 정보와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제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1998년 3월 북한 괴한들을 정구왕의 자택으로 이끈 장세영. 정구왕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사진 뒤에 신상 정보와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제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북한 땅이라니….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평양 외곽에 도착해 수용소 같은 시설에 감금됐다. 취조에 나선 그들은 정구왕의 정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탁자 위에는 숙소에서 탈취해 온 그의 수첩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인적 사항과 업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를 죽일 의도였다면 암살했을 것이다. 왜, 어떤 목적으로 나를 납치했을까.’ 머릿속으로 상황을 계산한 정구왕은 실명과 소속을 실토했다. 첫 신문 뒤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닭장 같은 감방에 갇혔다.

정보사, 진상조사 후 ‘사망’ 결론

서울 정보사 본부는 실종된 지 일주일이 지나 요원을 비밀리에 현장에 투입했다. 괴한의 침입 흔적이 발견됐고, 그의 수첩과 금고의 돈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임무 수행 중 누군가에 의해 납치돼 죽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고 묻어버리려 했다.

그 무렵 국내 신문에도 ‘단둥에서 한국 사업가 1개월째 실종’이란 기사가 등장했다.
“고려인삼산업주식회사의 한국인 직원 정병준씨(38·정구왕의 가명)가 한 달 가까이 행방불명됐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정씨가 금전이나 치정 관계로 납치됐을 가능성 외에도 납북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중국 공안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요청했다”는 게 골자였다.
1998년 3월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 실종 당시 기사. '고려인삼산업주식회사 한국인 직원 정병준(38)씨가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다. 정병준은 정구왕이 중국에서 쓴 가명이다. 사진 언론사 홈페이지 캡처

1998년 3월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 실종 당시 기사. '고려인삼산업주식회사 한국인 직원 정병준(38)씨가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다. 정병준은 정구왕이 중국에서 쓴 가명이다. 사진 언론사 홈페이지 캡처


해 질 무렵, 정구왕은 북한 군용 지프에 다시 실렸다. 도착한 곳은 군 병원이었다. 왼쪽 눈부터 입까지 찢어지고, 머리가 함몰되는 중상을 당한 그는 수술을 받았다. 50대로 보이는 인민군 복장의 의사는 “걱정 마시라. 잘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

북한은 그를 처형하지도 전향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정구왕은 북한을 탈출할 궁리를 짜냈다. 그는 자신을 붙잡아둔 북한 반탐 조직에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계속)

“살아 돌아가려 꺼낸 한마디가, 한국에 생환 후엔 족쇄가 됐다.”

북한에 갇힌 사이, 그의 실종은 의문의 여성과 얽힌 사건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 여자의 정체와 납치 사건의 관계를 둘러싼 괴소문은 귀환 후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죽었다고 여겼던 대북 공작관은 어떻게 북한에서 살아 돌아왔을까.
25년만에 대북 블랙요원이 직접 밝힌 피랍의 전말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673
비운의 블랙요원 이야기
北납치 정구왕 “날 총살하라”…고문 협박에도 숨긴 1가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387

위조여권 평양 탈출극 짰다…정구왕 풀어준 북한의 속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449

北 탈출에 “사우나서 보자”…정보사 접선지에 숨은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6133

조국은 내게 눈가리개 씌웠다, 北탈출 요원에 새긴 주홍글씨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7969

스파이 본능에 만난 리계향…‘답정너 수사’ 모멸 준 수사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669

고대훈.김민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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