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서는 이란전에 따르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이란이 “로스앤젤레스(LA)와 샌디에이고를 파괴하도록 두라”고 말했다. 두 곳 모두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데다 샌디에이고는 미 해군 기지가 여럿 모여 있는 태평양 전력의 핵심 거점이라 발언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네브라스카주에서 연설을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5일(현지시간) 네브래스카주 연설에서 물가 상승 등에 대해 “전쟁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금 높아진 것이다. 세계를 안전하게,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치르는 작은 대가(small price)”라고 말한 뒤 “그들은 도시 하나를 파괴(take out)할 수도 있다. LA를 파괴하게 놔두라. 샌디에이고를 파괴하게 놔두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아주 작은 대가”라며 “아주 곧 끝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그들’이 누구인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던 중 나온 발언인 만큼 이는 이란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려 꺼낸 “작은 대가”라는 표현이 이란이 도시 한둘을 파괴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연결된 것이다. 트럼프는 이어 베네수엘라와 유가 등으로 화제를 돌리면서 추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미 언론이 이를 지적하자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6일 X(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언론의 호들갑은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핵무장을 한 이란을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도시들이 위협받았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대통령 덕분에 미국은 더 안전하다. 이란에는 핵무기도, 해군도, 공군도, 돈도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란전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해도 미 대통령이 이란의 본토 공격도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 셈이라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교롭게도 LA와 샌디에이고는 모두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시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텃밭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샌디에이고는 미 해군 기지가 여럿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샌디에이고 해군기지는 태평양함대 수상함들의 주요 모항이며, 인접한 코로나도 해군기지와 노스아일랜드 해군항공기지는 항공모함과 해군 항공부대, 네이비실 부대의 거점이다. 영화 ‘탑건’의 실제 촬영지이기도 한 미라마 해병대 항공기지는 제3해병항공단을 지원한다. 설령 농담이었다고 해도 군 통수권자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지역을 이란의 공격 대상으로 거론한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중간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의 발언이 또 다른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조기투표가 시작됐다.
당장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X에 “주방위군과 해병대를 보내 캘리포니아를 점령하더니, 이제 도널드 트럼프는 외국의 적들이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를 ‘파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고 위험하다”고 올렸다.
민주당 소속 케런 배스 LA 시장은 “대통령의 역할은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지,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협하고 미국인의 생명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당 토드 글로리아 샌디에이고 시장은 “우리는 결코 희생시켜도 되는 ‘작은 대가’가 아니다. 당신의 무모한 전쟁 발언에 우리 도시를 끌어들이지 마라”고 했다.
반발은 공화당에서도 나왔다. 트럼프의 공식 지지를 받은 짐 데즈먼드 샌디에이고 하원의원 후보는 “해군 출신인 나는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복무했지, 미국 도시를 감수할 만한 전쟁의 대가로 치부하기 위해 복무한 것이 아니다”라며 “어떤 미국 도시도 희생시켜도 되는 대상이 아니며, 어떤 미국인 가족도 부수적 피해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선에 도전 중인 공화당 출신의 무소속 케빈 카일리 캘리포니아 연방하원의원은 “이란이 캘리포니아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 발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