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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6000원에 호화저택 내준 모로코인…12년 만에 깨달은 진실

중앙일보

2026.10.06 13:00 2026.10.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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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내의 혼잘다(혼자 잘 다녀오겠습니다)④ 모로코
모로코 마라케시 근교의 아가파이 사막.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이 모여든다. 사진 안시내

모로코 마라케시 근교의 아가파이 사막.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이 모여든다. 사진 안시내


“칭챙총(Ching Chang Chong).”

출입국 심사대에서 도장을 찍어주던 직원이 웃으며 말을 건다. 악의가 있는 건지, 몰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12년 만에 방문한다는 애틋함이 입국장 도장 찍는 소리와 함께 바스라졌다.

숨 쉬듯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 나를 보자마자 “사귀자” “결혼하자”며 자동 재생하듯 플러팅하는 모로칸 남자들. 강제로 헤나를 한 뒤 돈을 요구하는 집시까지. 한 달간 나를 괴롭힌 시끌벅적한 여행지, 모로코에 다시 왔다.

모로코에 가게 된 건 어디선가 본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눈은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프랑스에 지배당한 흔적이 남아 있고, 정체성은 아랍에 있다는 뜻이다. 도시를 걷다 보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랍어가 뒤섞여 들린다. 파란 도시 쉐프샤우엔(Chefchaouen), 사하라의 관문 마라케시(Marrakech), 해산물과 예술가의 도시 에싸우이라(Essaouira). 모로코는 도시를 옮길 때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나라다.
모로코 마라케시의 골목. 동양 여성이 지나가면 그렇게 추근댄다. 사진 안시내

모로코 마라케시의 골목. 동양 여성이 지나가면 그렇게 추근댄다. 사진 안시내


욕부터 배운 나라
아름다움만 생각하다가 간과한 것이 있다. 모로코는 내가 최초로 겪은 ‘무슬림’ 나라다.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으로, 그것도 동양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건 스무살의 나에게 꽤 가혹한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모로코에서 제일 처음 배운 아랍어가 욕이었을까.

“흐빌(Hbil. ‘멍청하다’는 뜻).”

내가 가만히 걷기만 해도 쉴 새 없이 들러붙는 남자들 ‘덕분에’ 입에 붙은 반격용 단어다. 내가 인기가 많아서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살면서 들은 사랑 고백보다 모로코에서 들은 고백이 훨씬 많다. 호객과 사기는 어찌나 심한지, 가격표가 없는 나라에서 ‘정가’는 매번 새로 태어났다.
마라케시 코우토우비아 모스크. 12세기에 건립된 마라케시의 랜드마크다. 사진 안시내

마라케시 코우토우비아 모스크. 12세기에 건립된 마라케시의 랜드마크다. 사진 안시내


관광도시 마라케시는 더했다. ‘1박에 30디르함(5000원)’이라는 말에 들어간 숙소의 주인장은 배낭을 풀자마자 말을 바꿨다. “우리 숙소에 묵고 싶어? 나랑 사귀면 30디르함, 안 사귀면 50디르함.” 성난 얼굴로 겨우 하나 알고 있는 모로코 욕을 뱉자, 그제야 “농담이었다”고 말한다.

늘 웃고 다니는 여행자인 나도 이곳에서는 사냥개다. 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노려보고, 현지인이 값을 치르는 것을 확인한 뒤 계산한다. ‘누구나 의심할 것.’ 이것이 여행 초보자의 모로코 생존법이었다.
올드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모로코의 페즈. 사진은 천연 가죽 염색 공장이다. 사진 안시내

올드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모로코의 페즈. 사진은 천연 가죽 염색 공장이다. 사진 안시내


그 시절 내 마음에 가장 진하게 남은 모로코의 도시는 올드 타운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페즈(Fez)’다. 야간 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 내린 페즈는 기이했다. 황량한 광장 위 하늘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았고, 1200년이 넘은 낡은 성벽과 전통의상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시간을 가늠치 못하게 했다.

반면 스무 살의 나는 초라했다. 질끈 묶은 머리칼은 땀에 젖었고, 배낭은 계속 어깨를 짓눌렀다. 여기저기서 “칭챙총” “치나(China)” 같은 말이 들렸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는 50디르함 이하의 숙소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더위와 배낭의 무게에 지쳐 낡은 가게 앞에 주저앉자,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마음속으로 모로코 욕을 되새겼다.

하산네 막내가 되다
모로코에서 민트티는 ‘환대’의 의미다. 가게를 방문하면 주인이 자연스럽게 내준다. 사진 안시내

모로코에서 민트티는 ‘환대’의 의미다. 가게를 방문하면 주인이 자연스럽게 내준다. 사진 안시내

“들어와서 따뜻한 민트티 한 잔 마실래? 거긴 너무 햇볕이잖아.”

가게 주인은 내가 너무 지쳐 보여 민트티를 대접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모로코에서 민트티는 환대의 언어다. 가게를 방문한 이에게 자연스럽게 내어준다. 나는 저렴한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가게 주인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세살배기 딸을 데리고 온 그는 자신을 ‘하산’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를 모로코 전통 가옥인 고급 리아드(Riad)에 데려갔다. 척 봐도 내가 가진 돈으로는 어림없었다.
페즈는 천연 가죽으로 유명한 도시다. 악취가 지독해 민트를 챙겨 다녔다. 사진 안시내

페즈는 천연 가죽으로 유명한 도시다. 악취가 지독해 민트를 챙겨 다녔다. 사진 안시내

“공짜는 아니야. 50디르함. 어차피 남는 방이야. 대신 내 딸과 가끔 놀아줘.”

벌써 내 품에 안긴 뽀글머리 소녀는 땀에 젖은 내 뺨에 입을 맞췄다. 내게 주인 부부는 따끈한 오믈렛과 촉촉한 빵, 갓 짠 오렌지 주스, 민트티를 내왔다. 보름이 넘은 모로코 여행 중 처음으로 먹는 제대로 된 한 끼였다.

페즈에서의 따스한 시간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딸을 돌보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낮에는 그들이 운영하는 상점에 앉아 행인을 구경했다. 주인 내외가 나를 “막내 동생”이라 부르자, 올드 타운의 사람들도 나를 “하산네 막내”라 불렀다.

내가 머물던 리아드는 늘 만실에 가까웠지만, 내 방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비어 있었다. 12년이 지나 돌이켜보니 하산의 말은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이곳을 떠나야 했던 날, 나는 남은 돈 전부와 소중히 그린 그림을 편지 사이에 끼워두고 방을 나섰다.
페즈 하산네에서 아침식사를 챙겨줬다. 모로코에서 처음 먹어본 제대로 된 모로코 가정식이다. 사진 안시내

페즈 하산네에서 아침식사를 챙겨줬다. 모로코에서 처음 먹어본 제대로 된 모로코 가정식이다. 사진 안시내


겉보기엔 거칠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 많은 나라. 사람 냄새 잔뜩 나는 여행지. 모로코가 그랬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니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이 보였다.

그 뒤로 내 여행 방식은 달라졌다. 흐빌 같은 욕 대신 ‘하비비(Habibi. ‘친구야’라는 뜻)’ 같은 예쁜 말을 알게 됐다. 여전히 말을 거는 모로칸 남자들에게 나는 큰소리로 답한다. 외웠던 욕은 하나만 빼고 까먹은 지 오래다.

“살람 알리쿰(안녕하세요), 하비비, 인샬라(신의 뜻대로)!”
모로코 여행 실전 팁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모로코에서는 길을 안내해 주거나 사진을 촬영한 뒤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 확인이 꼭 필요하다. 올드 타운은 복잡하고 GPS가 불안정하다. 숙소 주인의 안내가 제일 정확하다. 흥정할 때 ‘무료’라는 말은 끝까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거스름돈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잔돈을 충분히 준비하면 흥정에 유리하다.

배낭여행자 안시내 [email protected]
스무 살, 아르바이트로 모은 350만원을 들고 처음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141일간 세계를 떠돌고 돌아온 뒤, 여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이후 10년 넘게 배낭 하나 메고 인도·아프리카·동남아 등을 여행하며 낯선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여행이라는 일』 등 책 8권을 냈다.


손민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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