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진실은 실낱 같은 희망을 가슴에 새기며 칠흑 같은 어둠 뚫고 은빛 날개를 펼친다. 반딧불처럼 작은 빛이라도 민중은 역사를 올바로 기억한다.
영화 ‘암살자(들)’가 역사왜곡 논란으로 비난을 받으며 국민적 분노로 점입가경이다. 차라리 잘 됐다. 죽은 자는 말할 수 없지만, 남은 사람들은 참담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1974년 8월 15일 영부인이 목숨을 거둔 날, 21살 여대생은 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운명은 장난치지 않는다. 가끔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할 뿐이다. 운명은 여러 개의 주사위를 던진다. 선택은 하나뿐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주사위를 집어야 한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은 실감나지 않았다. 두 달 전, 다정하고 우아한 자태로 백학처럼 날개를 펴고, 한 여자 인생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신 분! 애도의 눈물을 담은 인터뷰가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정보부 요원이 신변보호를 위해 안전한 은신처로 데려가 연설문을 쓰도록 달랬다. 영부인 죽음이 믿기지 않아 원고지가 뭉개질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달성공원에서 연사로 나온 여대생이 흘린 눈물은 청중을 감동으로 사로잡았다.
운명의 시계는 ‘1974년 봄’으로 되돌아간다. 졸업은 다가오고, 모교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한 목소리가 가슴을 흔들었다. 다섯줄로 쓴 편지를 청와대로 보냈다. ‘개교기념 행사에 초대합니다. 젊은 청춘들과 어울려, 조국의 미래를 꿈꾸는, 희망을 위한 만남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꼭 오세요!’ 비서실에서 청와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날 처음 계단을 내려오는 영부인을 바라보았다. 품위 있는 자애롭고 다정한 모습에 숨이 막혔다. 낡은 청바지에 양키시장에서 산 헌 옷 버리고 우아하게 살리라 다짐했다. 행사는 잘 진행되었고 덕분에 학생회 대표들과 지도교사가 청와대 만찬에 초대됐다.
1974년 7월 4일 같은 해 운명의 실타래는 풀리기도 전에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미국공보원(USIS) 주최 미국 독립기념 파티에 초대됐다. 2학년 때부터 미공보원 원장 부인 라우리 여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남편이 칠레 대사로 발령돼 한국말로 송별 인사를 하고 싶다며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이 든 귀빈들 속에 밀가루 포대를 뒤집어써도 눈에 띄는, 내 나이 21살! 미 육군보급사령관은 신변보호 차원에서 급한 상황이면 대피하도록 미군부대 출입 ‘임시 패스’를 발급하고 나의 신변을 주시했다.
1974년 8월, 근혜씨가 대통령 배우자 직무대행 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어머니 한복을 입었어요’ 근혜씨는 울지 않았다. 나는 붕어 눈이 되도록 슬피 울었다. 다음해 봄, 교정에 영부인이 마지막 심은 나무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났다.
1975년 7월 4일 한국정부 주관으로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 축하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됐다. 200명 정도 미군 장성과 부인들이 초청됐다. 한국인은 단 한 명, 미 육군 보급사령관 아내였다. 영애와 악수하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가볍게 껴안으며 ‘행복하세요’라며 등을 토닥였다. 각자의 운명이 맞을 슬픈 세레나데로 기억된다.
2004년 출간된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자전 에세이에 고 육영수여사와 박근혜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록했다. 출판 허가가 나지 않거나 판매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편집실 권유로 삭제됐다.
이제 더 이상 흔들리며 눈물 흘리지 않는다. 절망하지 않는다. 역사를 왜곡시키고 조작해도 진실의 뿌리는 자를 수 없다. 눈물 대신 정신 줄 동여매고 조국의 내일을 지켜볼 것이다. 암살자(들) 논란은 큰 교육을 남겼다. 절망하지 않고 뭉치면 빛나는 역사를 정직하게 기록할 수 있다. 희망의 불꽃은 도처에서 타오른다.
2030 젊은 세대들이 움직인다.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주역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