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불법 입양된 자신의 유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44) 감독을 5일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내 카페에서 만났다. 나원정 기자
“내 모든 삶은 거짓에 기반해 있었어요. 그걸 2015년에야 알게 됐죠. 조작된 입양 서류엔 호적과 여권 발행을 위한 정부 기관 도장도 찍혀 있었어요. 불법 입양의 전 과정에 한국 정부가 관여했죠.”
지난해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가 국가 폭력으로 인한 인권 침해로 인정한 불법 해외 입양 56명에 포함된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44) 감독의 말이다. 자신의 입양 과정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를 오는 9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그를 5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리 만났다.
유난히 긴 이름엔 생후 2개월 만에 먼 바다 건너 덴마크로 입양 간 한인 입양아의 굴곡진 삶이 서려 있었다. 유산을 거듭했던 쇠렌센 부부는 입양 신청 9개월 만에 귀여운 여자아기를 안았다. 주유소집 외동딸 탄야 쇠렌센. 동양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소도시에서 ‘여느 백인 아이’처럼 사랑받으며 컸지만, 가족 중 누구도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언급 않은 환경이 외려 그를 겉돌게 했다.
다큐멘터리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에 나오는 입양 초기 태경 탄야 인월 쇠렌센 감독(가운데)과 덴마크인 양부모의 모습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철들기 전에 양부모의 이혼이 닥쳐왔다. 양육권 다툼은 재혼 후에도 딸을 품에서 놓지 않은 양어머니의 병사(病死)로 끝이 났다. 그 사이 아들 둘을 둔 새 아내를 맞은 양아버지와 살게 됐다. 그러나 다정했던 아버지는 가세가 기울자 무너졌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주취 폭력 끝에 호수에 빠져 숨졌다. 남편의 폭력에도 데려온 아이와 낳은 아이를 고루 사랑해준 새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인이 되며 쇠렌센 감독은 ‘나와 닮은 사람’들을 찾아, 덴마크 한인 입양인 단체와 교류했다. 태경이란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때껏 한국에 가볼 생각을 못했던 건 입양부모가 간직해온 영문 서류가 생일, 이름도 없는 반 백지였기 때문이다. 기초 정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2015년 한국 입양 기관을 두드렸다. 다른 입양아가 가르쳐준 대로 한국어 출생기록증을 신청했다. 받아든 서류엔 뜻밖에도 어질 인(仁)에 달 월(月)자를 쓴 ‘황인월’이란 이름 석 자가 뚜렷했다. 1982년 9월 21일 인천 한 조산원에서 태어난 스무 살 미혼모의 딸이었다. 신속한 해외 입양 절차를 위해, 입양기관이 영문 서류에서 버젓이 살아있는 생모와 출생 정보 일체를 삭제한 것이다.
“대다수의 한인 입양인 친구들의 출생 이야기가 같다는 걸 알게 됐죠. 모두 ‘문서상 고아(Orphans on Paper)’였고,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신생아 때 덴마크에 왔어요. 입양 기관 앞에 버려져 있었다는 배경도 유사했죠.”
쇠렌센 감독은 서류가 위조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입양 수속 중에 아기가 사망하자 다른 아기로 바꿔치기 해 보낸 사례도 있었다. 실종 아동이 고아로 조작되기도 했다. 전국을 헤매며 딸을 찾던 부모가 수십 년 만에 미국에 입양 간 딸과 재회하는 일도 벌어졌다. 진화위 조사로 드러난 불법 실태다.
쇠렌센 감독은 “나는 충격적인 경우는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 다수 입양인의 보편적 사례에 가깝다”고 했다. 다큐를 만든 것도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왜 그런 선택에 놓일 수밖에 없는지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태경 타냐 인월 쇠렌센 감독이 덴마크 양부모에게 물려받은 출생기록부에는 대부분이 공란이었지만, 이는 조작된 서류로 드러난다. 사진은 쇠렌센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홈시크' 한 장면. [사진 영화 예고편 캡처]
“가족을 신성시 해온” 덴마크 사회에서 주변의 이웃, 친지가 알고도 모른 척했던 양아버지의 폭력 속에 어린 자식을 위해 가까스로 생존한 양어머니와 새어머니가 자신의 생모와 겹쳐졌다. 그는 한국에 해외 여행 자유가 없던 그 시절 갓난아기를 머나먼 나라로 떠나보낸 생모가, 미혼모에게 수치심을 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고아’를 해외로 수출한 한국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라고 여겼다.
“엄마(Omma),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다큐에도 나오는, 생모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수없이 이렇게 되뇐 그는 “저를 떠나보낸 그 제도가 당신이 저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워했다.
쇠렌센 감독은 “남들보다 부모가 좀 더 많은 성장환경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았다. 제게 가장 ‘엄마다운 엄마’는 제일 오래 함께 지낸 새어머니였다. 어머니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온 평범하고도 강인한 여자들이었다”면서 이 다큐를 “세 어머니에 대한 저의 사랑,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홈시크: 바다의 끝에서'에서 쇠렌센 감독은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한 제사 방법에 따라 "의도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제사"도 지낸다. 제사가 조상을 기억하고 내생의 복을 비는 일이라면, 자신의 조상은 한국에 없는 나를 찾기 힘들 거라 생각해 출생정보의 단서가 될만한 입양인 번호를 위패처럼 제삿상에 올렸다. "한국에 있지 않다고 살아있지 않은 게 아니듯, 우리 조상이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바라보게 하고 그 사이 경계를 흐트리고자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덴마크의 한인 입양아 친구들이 제의 장면에 함께 출연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덴마크에서 이 다큐를 먼저 공개했을 때는 “어떤 것이 좋은 가족이고, 나쁜 가족인가” 사회적 논의도 이뤄졌다고 한다. 쇠렌센 감독은 “이 사회가 어떤 가족을 정상 가족으로 보는가는 한국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60대가 넘은 생모가 여전히 저를 만나면 가정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사회에 미혼모란 존재가 지금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모가 다큐를 봐주길 소원했다. “부디 엄마가 이 영화를 통해 수치심을 벗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면서 “입양인이 여전히 자신의 출생이나, 생부·생모에 대한 정보에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은 동시대적 문제다. 불법 입양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를 통해 미혼모에게 주어진 입양에 대한 수치심이 사라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쇠렌센 감독은 이 다큐가 "세 어머니를 에 대한 저의 사랑, 러브레터"라고 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엄마가 되며 헤아리게 된 사랑이다. 인류학 박사학위를 따고 만든 첫 다큐 ‘콜롬비아인 가족’(2020)에서 부모의 정치활동 속에 방치됐던 딸과 어머니의 재회를 그리며 자신의 상황을 빗대보곤 했던 쇠렌센 감독은 ‘엄마의 엄마’를 궁금해 하는 어린 아들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