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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Los Angeles

2026.10.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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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아 수필가

엄영아 수필가

아끼던 것을 잃어버리면 마음 한구석이 비어버린 듯하다. 물건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그 안에 담아두었던 사람과 시간까지 함께 사라진 것처럼 허전했다.
 
영란과 함께 창덕궁 안에 있는 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창덕궁에는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해설 봉사를 하는 영란 친구의 남편분이 계시는데, 은퇴 후 외국인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비원으로 간다는 통화를  귀담아듣고, 언제나 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바쁜 봉사 중에도 우리를 기다려준 마음이 고마웠다. 창덕궁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더는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그분은 망설이지 않고 뛰어가 휠체어를 구해왔다. 그리고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직접 밀어주었다. 고마웠다.
 
그날 비원에서 받은 것은 휠체어의 도움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함께 받았다. 그분은 작은 볼펜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로 건넸다. 외국인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두부 빛을 띤 작고 소박한 볼펜. 몸통에는 훈민정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남편을 위해 휠체어를 가져와 밀어주던 모습, 우리를 기다려주었던 마음이 작은 볼펜 하나에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그것은 내게 명품 펜처럼 귀했다.
 
그런데 너무 잘 보관하려 했던 탓일까. 어느 날부터 그 볼펜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집 안을 몇 번이나 뒤졌다. 며칠, 몇 달이 지나고,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잊을 법도 한데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볼펜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며칠 전이었다. 컴퓨터 가방을 정리하다가 한쪽에 작은 지퍼 포켓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주머니가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지퍼를 열고 손을 넣는 순간 손끝에 차갑고 매끄러운 것이 닿았다. 훈민정음이 새겨진 작은 볼펜이었다. “아, 여기 있었구나.” 3년 동안 찾고 찾던 것이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 믿기지 않았다. 내가 들고 다니던 컴퓨터 가방 속, 작은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귀한 것들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멀리 있는 것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지나칠 때가 많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평범하게 주어지는 하루도, 이미 받은 작은 사랑도 그렇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귀했는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간과 마음이 사실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처음 그것을 받았을 때보다 지금 손에 쥔 마음이 더 깊다. 잃어보았기 때문이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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