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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페이스메이커인가, 트러블메이커인가

Los Angeles

2026.10.0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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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사회부 기자

김경준 사회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제81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해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가 돼 달라며 자신은 이를 돕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한 약속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를 보면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는커녕 한미 공조와 한반도 평화에 혼선을 가져오는 ‘트러블메이커’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난 7월 애스펀 안보포럼 취재 당시 25년 차 외교·안보 분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보다 올해 북한에 대한 언급이 유독 없지 않았나.”
 
돌이켜보면 그랬다. 중국, 러시아, 이란과 함께 미국의 적대국을 거론할 때 북한이 등장하긴 했지만 북한 자체의 위협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논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북한의 사이버 위협 등이 현안으로 다뤄졌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키우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까지 강화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의 외교 담론에서 북한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 싱크탱크와 학계에서 북핵과 사이버 위협, 인권 문제가 계속 논의되도록 의제를 던지고 관심을 붙잡아야 한다. 이것도 공공외교다. K팝과 K푸드를 알리는 것만이 공공외교가 아니다.  
 
특히 북한 인권은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지렛대다. 지난 6월 팀 케인(민주)과 댄 설리번(공화) 연방 상원의원이 함께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가 초당적 의제로 다뤄진다. 또 미국 법은 북한인권특사를 두고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도록 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진보 정권은 남북관계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뒀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현 정부 역시 같은 우려를 사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까지 협상의 뒷전으로 밀어놓아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서 북한 관련 의제를 키워야 할 시점에 대미 외교에서는 신뢰 쌓기보다 혼선을 키우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미 투자 협의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84억 달러 규모 원유 회수 사업과 알래스카 LNG 투자를 잇달아 발표하자 한국 정부는 합의된 내용이 아니거나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선을 그었다. 미국 대통령은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정정하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이런 식의 대미 외교로는 이 대통령이 원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힘을 얻기 어렵다. 북미 사이에서 페이스를 조율하려면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워싱턴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통상과 투자 문제에서조차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놓는데, 훨씬 민감한 북핵 협상에서 한국이 조정자 역할을 맡겠다고 한들 미국이 얼마나 신뢰하겠는가. 페이스메이커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상대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외교적 신용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사례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외교가 이어질 때만 해도 문 전 대통령은 중재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워싱턴에서는 대북 제재 완화를 서두른다는 불만이 나왔다. 여기에 더해 평양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며 한국을 거쳐야 할 필요성을 잃었다.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정작 중재할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진정 한반도 평화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싶다면 순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에서 북한 문제의 존재감을 높이고 북핵과 인권에 분명한 원칙을 세우는 동시에, 한미 간 신뢰부터 단단히 다져야 한다.  
 
페이스메이커는 스스로 선언한다고 얻는 자리가 아니다. 함께 뛰는 상대가 속도를 맡길 만큼 신뢰할 때 비로소 맡을 수 있는 역할이다. 한반도 평화를 이끌겠다던 페이스메이커가 오히려 흐름을 꼬이게 하는 트러블메이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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