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250주년] 건국 250년, 아메리칸 드림 옅어져 미국인 연방정부 신뢰도 17% '최저' 진영 갈려 민주적 의사결정 위기 탓
기축통화 지위, 경제는 여전히 견고 세계 인재 모여들고 시스템 잘 작동 정치엔 금이 갔지만, 국력은 '강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노스다코타주 메도라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리덤250'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프리덤250 열차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250주년을 기념해 대형 철도회사 BNSF가 제작한 특별열차다. [로이터]
미국인들에게 건국 250주년은 마냥 가슴 벅찬 축제만은 아닌 듯하다. 자축과 함께 자성의 기류도 강하다. 지금의 미국이 스스로 믿어온 나라가 맞나, 하는 회의감 말이다.
건국 200주년이던 1976년과 비교해보자. 그해 미국을 대표한 영화는 '록키'였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나라가 흔들렸지만, 미국인들은 무명 복서의 도전에서 여전히 내일을 믿었다. 그의 패배마저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오늘의 할리우드는 어떤가. 아메리칸 드림을 예찬하는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뇌리엔 지난해 히트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잔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지난 7월 개봉한 '영 워싱턴'은 건국의 영웅보다 고뇌하는 청년 조지 워싱턴을 그렸다. 5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영화 한 편이 시대를 말해주진 않지만, 여론조사는 그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한 달 전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NORC)의 설문조사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하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과거엔 유효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답이 50%였다. '처음부터 유효하지 않았다'는 냉소적 반응도 15%나 됐다.
또 NBC뉴스의 지난 6월달 조사에선 10명 중 6명꼴로 '미국은 최고의 시절을 이미 지났다'고 답했다. '미국인이라는 점이 극도로 자랑스럽다'는 응답은 33%로 역대 최저치였다. 9·11 테러 직후인 2000년대 초 60~70%에서 계속 내리막이다. '자랑스럽지 않다'는 응답은 2000년대 초 3~5%에서 올해 21%로 높아졌다. 미국인의 회의가 짙게 밴 수치다.
미 쇠퇴론 근거 '투키디데스 함정'의 오류
이 변화엔 당파적 간극이 크게 반영됐다. '미국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는 응답은 공화당 지지층에선 90%에 달했지만, 민주당 지지층에선 29%에 불과했다. 이제 미국에 대한 자긍심마저 진영에 따라 갈리는 시대가 됐다.
양당 모두 중도의 구심력은 약해지고, 극단의 원심력은 커지고 있다. 공화당은 마가(MAGA)에 포획됐고, 민주당은 민주사회주의연맹(DSA)에 끌려다닌다. 19세기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힘으로 꼽았던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와 결사 문화는 퇴화해 흔적기관으로 남았다. 언론과 사회단체마저 진영의 전초기지처럼 움직이면서 대화와 설득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치는 토론장이 아니라 참호가 됐다.
반대편을 공존이 아닌 청산의 대상으로 보는 정치언어는 거칠어졌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나는 여러분의 보복(retribution)"이라고 선언했고, 집권 후 인적 청산을 벌였다. 반대편에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최근 팟캐스트에서 트럼프 이후 '탈MAGA화'라는 적폐청산 프로그램을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차기 잠룡 중 하나인 J 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도 정권 교체 후 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기소를 거론했다.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응징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가 일상화됐다.
하필 건국 250주년에 통합과 기념보다 숙청과 보복의 기류가 워싱턴 정가를 뒤덮은 모습이다. 트럼프 정부 주도의 기념행사들도 진영 갈등 탓에 온전한 자축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애국을 호소하면 프로파간다라고 공격받고, 비판을 하면 반미국적이라고 매도당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극단적 진영 갈등을 두고 '냉내전(cold civil war)'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피는 흐르지 않지만, 정치·문화·심리적 적대감은 내전 양상을 닮았다는 진단이다. 나라 안에서 서로를 설득 대상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할 적으로 보는 순간, 통합은 이미 깊은 내상을 입었다.
이는 독일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가 개념화한 통치불능(ungovernability) 상태에 가깝다. 국가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서로 발목을 잡아 민주적 의사결정이 작동하지 않는 교착상태를 말한다. 연례행사가 된 연방정부 셧다운, 의회의 당파적 표 대결, 선거 불복, 정치폭력과 암살 시도… 최근 빈번해진 현상들은 '소프트한 통치불능'의 징후로 해석된다.
사회 도처에서 문제와 요구는 쏟아지는데, 제도적 처리능력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미국인의 연방정부 신뢰도가 올해 17%로 역사적 저점 수준이라는 퓨리서치의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국민은 국가를 믿지 않고, 국가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물론 미국의 민주주의가 통치불능에 빠졌다 해서, 권위주의가 효율적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토론은 내부에서 끝내고, 일단 결정되면 대오이탈 없이 밀어붙이는 사회주의식 민주집중제가 효율적이라고 보면 오판이다. 반면교사가 중국이다. 2025년 국제통화기금(IMF) 워킹페이퍼는 서구의 3배에 달하는 중국의 산업 보조금이 되레 경제성장을 최대 2% 갉아먹었다고 분석했다. 풍요를 만드는 건 정부 엘리트의 기획이 아니라 개인의 창의와 자유시장이다.
미국은 늘 위기론에 휩싸여 왔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다. 조만간 추락할 기미도 안 보인다. 미국 쇠퇴론의 그럴듯한 근거로 거론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역사학계에선 과도한 일반화로 평가절하된다. 고대의 최대 패권국은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아니라 페르시아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시 복합적인 지역 분쟁의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위세에 매료된 이들은 이를 무슨 자연법칙이라도 되는 듯 신봉한다.
미국의 쇠락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은 달러의 존재다. 사회 내부적 위기와 무관하게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는 견고하다. 실물경제에선 미국의 비중이 하락했지만, 국제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이용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25년 말 세계 외환보유액의 56.8%가 달러 자산이었다. 뒤이어 유로 20.2%, 엔 5.8%, 파운드 4.4%였다.
리카르도 카바예로 MIT 교수는 달러 기축통화의 근거를 글로벌 안전자산의 부족에서 찾는다. 미국 국채를 대신할 AAA 등급의 안전자산이 없는 한 달러 패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2위로 커졌지만,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기축통화란 세계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쓰고, 맡기고, 되팔기 편한 돈이다. 중국이 그걸 원한다면 수십 년에 걸쳐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거나, 해외에 융자를 해줌으로써 위안화를 전 세계가 젖을 정도로 뿌려줘야 한다. 완전한 자본이동, 안전한 금융시장, 법치주의와 예측가능성도 필요하다. 이게 공산당 정권의 통제체제와 연간 1조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 구조에서 가능하겠나.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올라서는 것보다 중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미국 건국 200주년이던 1976년 개봉한 영화 '록키'의 한 장면. 미국인들은 무명 복서의 도전을 통해 '내일'을 향한 희망을 찾았다. [중앙포토]
위안화 기축통화? 월드컵 우승이 쉬울 것
미국은 경제에서만 우월한 게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이민의 장벽을 높이긴 했지만, 미국은 외부 인재의 유입을 통해 인구학적 역동성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갤럽 연례조사에서 올해 전 세계 잠재적 이민의 15%가 미국을 희망 행선지로 꼽았다. 주류 언론들은 이게 역대 최저치라는 걸 강조한 채 여전히 부동의 1위라는 건 굳이 부각시키지 않는다. 2위인 캐나다(9%)와 3위 독일(5%)은 아직 한 자릿수다.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지만, 다른 강대국 사정도 나아 보이진 않는다. 유럽에서도 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진영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또 중국은 매년 국방비와 비슷한 액수의 치안예산을 쓴다. 외적만큼 내부 동요를 경계한다는 뜻 아닌가.
반면 미국에선 거대한 갈등 속에서도 시스템이 작동한다. 특히 50개 주 정부의 다양성과 권력분산 구조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는 방화벽 역할을 한다. 1975년 '건국 200주년 강연'에서 한나 아렌트는 그 일상성이 권력의 폭주를 허용한다고 경고했지만, 오히려 일상이야말로 권력과 개인 사이의 완충장치 아닐까.
어느 나라에나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한다. 한쪽만 보고 미화하거나 비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자기 나라를 폄하하는 미국 먹물들의 사고방식엔 결벽증과도 같은 패턴이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누리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누리는 자유·권리·풍요·법질서 등을 미국에선 당연히 완전체로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중 일부라도 불완전하거나 다소 지체될 경우, 그 현실을 견디지 못한 채 자기 나라를 유독 정의롭지 못하다고 규탄한다. 미국 특유의 자기 수정능력엔 눈을 감고, 비관주의를 전파한다.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슬로건의 급진 단체 활동가가 뉴욕의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후보가 된 걸 보면 이제 자기 부정은 선을 넘었다.
그들에겐 미국이 아직 강하다는 사실이 불편해 보이는 모양이다. 미국은 힘이 모자라는 국가가 아니다. 통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약해진 나라다. 정치엔 금이 갔지만, 국력은 강철이다. 다스리기 어려워졌을 뿐 여전히 강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