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5000불 '배당' 파격카드 민주, 의료·전기·주거비로 맞불 유가·관세까지 생활비 전선 확대
급진 좌파 정파 민주사회주의연맹(DSA) 회원들이 지난 2017년 뉴욕 맨해튼에서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 [DSA 제공·로이터]
공약은 구도·인물과 함께 선거를 움직이는 3대 요소다. 개별 지역구에서 국지전을 벌이는 중간선거에서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약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선 아무래도 정책 수단을 쥔 집권당이 유리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심 공약을 턱턱 내놓고 있다. 가장 파격적인 카드는 지난달 댈러스의 전당대회에서 밝힌 이른바 ‘트럼프 배당’이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지키면 성인 미국시민에게 1인당 5000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기름값·식료품비·렌트비 등 품목별로 잡다하게 오른 생활비 부담을 현찰로 통 크게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선점한 ‘생활비 부담 경감(affordability)’ 의제에 대한 정면 대응이다.
워싱턴DC의 초당파 재정정책 단체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이 공약엔 1조2000억 달러가 소요된다. 경제를 운용해 창출한 부가가치의 합계인 국내총생산(GDP)으로 치면 스위스의 1년치 경제활동을 한번에 털어넣는 셈이다. 현금 살포나 다름없다. 규율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재정 보수주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다. ‘매표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여론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여론조사 업체 베라사이트에 따르면 조건 없이 ‘5000달러 지급’을 정책으로만 제시했을 경우 찬성 53%, 반대 35%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정책이라고 밝혀도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 천문학적 현찰을 일시에 풀 경우 가뜩이나 심한 인플레를 더욱 자극하고 금리도 추가 상승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당과 후보자는 경제논리에 신경 쓰진 않는다. 우호적 여론이 우세한 걸 보면 유권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유권자를 향한 ‘구애 행정’도 시작됐다. 연방정부는 오바마케어 가입자 약 100만 명에게 500달러씩 환급하기 시작했고, 이달에는 메디케어 파트 B 가입자 2000만 명 이상에게 90달러를 지급한다. 행정부는 각각 과다 징수된 비용 반환과 보험료 부담 완화라고 설명하지만, 선거 직전 피부에 와닿는 지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효과도 예상된다.
민주당은 트럼프에 대한 불만, 생활고 등을 정책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생활비 부담 경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다만 현금 지급을 앞세운 공화당과 달리 의료·에너지·주거비 등 가계의 고정지출을 직접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오바마케어(ACA) 보험료 지원 확대와 메디케이드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에 따른 전기료와 물 사용 문제도 생활비 이슈로 연결해 ‘빅테크보다 주민의 부담 완화가 먼저’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주거비 문제에서도 주택 공급 확대와 임대료 부담 완화를 주요 의제로 삼고 있다.
관세도 생활비 문제로 연결한다. 사실 관세는 국내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예컨대 미국내 커피 생산량이 미국인의 반나절 소비량에 불과한데도 두 자릿 수 관세를 매기는 건 생활비 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바로 이런 허점을 파고든다. 공화당이 현금과 환급으로 당장 지갑을 채우겠다는 접근이라면, 민주당은 의료비·전기료·주거비 등 매달 빠져나가는 돈을 줄이겠다는 접근인 셈이다.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졌다는 건 정권심판 심리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미국인에게 상징적인 지표가 기름값이다. 민주당은 고유가의 주범을 트럼프가 일으킨 이란 전쟁 탓으로 돌린다. 유세장의 단골 메뉴다. 많은 유권자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트럼프 2기의 평균 유가는 바이든 정부 때에 비교해 명목으로 갤런당 9센트 낮다. 인플레를 반영한 갤런당 실질 유가는 오바마 시절 4.33달러, 트럼프 1기에 3.29달러, 바이든 정부 땐 3.91달러, 이어 트럼프 2기에 3.45달러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민주당에 별로 유리하진 않다. 민주당은 ‘지금 오른 기름값’을 묻고, 공화당은 ‘임기 평균 기름값’을 내민다. 뭘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된다.
결국 양당의 공약은 한 곳을 향한다.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에 지친 유권자의 지갑이다. 공화당은 현금 지급과 환급이라는 직접 지원을, 민주당은 의료·에너지·주거비 등 고정비용을 낮추는 처방을 앞세운다. 어느 쪽이 유권자의 체감에 더 와닿느냐가 정책 대결의 승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