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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한글 간판 아래, 한인타운 역사는 계속

Los Angeles

2026.10.0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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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곳곳에 한식당 의미
한인 이민사 과거, 미래 공존
볼티모어 찰스 스트리트와 노스 애비뉴 인근에 ‘미스터 김’으로 불린 서울 떡집 창업자의 초상 벽화가 있다. 1970년대 문을 연 서울 떡집은 볼티모어 초기 한인 업소 중 하나였다. 벽화는 한인들이 이곳에서 일하며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볼티모어대학교 인스타그램]

볼티모어 찰스 스트리트와 노스 애비뉴 인근에 ‘미스터 김’으로 불린 서울 떡집 창업자의 초상 벽화가 있다. 1970년대 문을 연 서울 떡집은 볼티모어 초기 한인 업소 중 하나였다. 벽화는 한인들이 이곳에서 일하며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볼티모어대학교 인스타그램]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옛 한인타운에서 한식당들이 한인 이민사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6일 지역 언론 볼티모어비트는 한인타운의 역사와 한식당들의 변화를 집중 조명하며, 지역에 남은 식당들이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고객층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볼티모어 스테이션 노스 지역의 빈 건물 외벽에는 폐업한 식당들의 한글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다. 볼티모어비트는 볼티모어선의 1978년 기사를 인용해 “당시 볼티모어 한인 인구는 약 1만4000명으로 최대 아시아계 커뮤니티였다”고 전했다.
 
한인타운 형성의 배경에는 1965년 연방 이민·국적법 개정이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출신 이민자에 대한 명시적인 법적 차별이 철폐되면서 한인 이민이 늘었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업소들도 스테이션 노스에 모여들었다. 병원과 여행사, 찻집, 보석상 등 수십 개 업소가 들어섰다. 노스 찰스 스트리트의 약 1만 스퀘어피트 규모 ‘현대 플라자’는 한때 한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지금은 상당수 업소가 사라졌지만 한식당 ‘종각’은 남아 있다. 1989년 문을 연 종각은 현재 부모에게 운영을 물려받은 정석씨와 아내 김나리씨가 운영하고 있다.
 
종각은 한인 업주들의 심야 사랑방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매일 오전 4시까지 영업했다. 주류 판매점과 테이크아웃 식당, 소규모 편의점 등을 운영하던 한인들은 일을 마친 뒤 이곳에 모였다.
 
중학생 때 부모와 이민 온 정씨는 일찍부터 가족의 통역을 맡았다.  그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부모를 대신해 사업 관련 업무를 도왔다”며 “식당 운영을 물려받은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2대째 운영 중인 종각은 그사이 고객층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손님의 약 90%가 한인이었다. 지금은 타인종 고객이 늘면서 한국어 메뉴를 영어로 번역해야 했다.
 
정씨는 고객층이 바뀌어도 기존 한식 메뉴를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고기를 주문하면 된장찌개와 뚝배기 계란찜을 제공한다.  
 
새로운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즉석 사진 부스와 진로 두꺼비 조형물도 마련했다.
 
종각 옆에 자리 잡은 ‘콩포차’도 타인종 젊은 세대의 수요를 겨냥한다.  
 
창업자인 강소빈·위대한씨 부부는 인근 대학생과 병원 등을 고려해 포차 형태의 식당을 구상했다. 지난해에는 컬럼비아에 두 번째 매장을 마련했다.
 
옛 한인타운의 또 다른 식당 ‘B1 BBQ’도 변화하고 있다. 약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식당을 5년 전 인수한 업주들은 “이제 전통적인 한인 고객 중심의 식당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볼티모어의 한식당들은 한인 이민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인 셈이다.
 
한인타운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타우슨대 아시아 예술·문화센터와 센트럴 볼티모어 파트너십은 매년 5월 ‘아시아 노스 전시·축제’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인타운의 역사를 기록하는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김여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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