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점 부근 S&P 500와 동시 확장 신저가 종목 하이일드 확대와 20여 년 만의 장기 금리 주목 금융·상업용 부동산에서 신용 경색 초기 신호
9월 말 증권 계좌를 열어본 많은 투자자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S&P 500 지수는 8월 중순 기록한 고점에서 불과 2% 안팎 떨어진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나스닥 역시 고점 부근에 머물러 있다. 장기 금리가 20여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는데도 월가에서는 주식시장이 높은 금리에 적응했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겉으로 보기에 시장은 여전히 평온하다. 그러나 지수라는 숫자 하나만 보고 시장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수 아래에서 개별 종목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채권시장과 신용시장은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이번 달에는 평온한 표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균열의 신호들을 차분히 짚어보고, 투자자가 지금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정리해본다.
▶숫자 하나가 감추는 시장의 진실
S&P 500이 고점 부근을 지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승은 소수의 초대형 기술주가 떠받치고 있는 결과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8월 5일 고점 대비 약 8% 하락했고, 경기 흐름에 민감한 운송지수는 4월 고점 대비 22%나 밀렸다.
더 눈여겨볼 지표는 신고가와 신저가 종목 수다. 최근 S&P 500 구성 종목 가운데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 수가 신고가 종목 수를 12거래일 연속, 최근 18거래일 중 17거래일 동안 앞섰다. 지수가 고점에서 2% 이내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90년 이후 1999년 12월과 2000년 1월, 그리고 지금뿐이다. 지수와 중간값 종목 사이의 괴리를 측정하는 지표 역시 닷컴 버블 정점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비유하자면 행진의 선두에 선 몇몇 깃발은 높이 솟아 있지만, 뒤따르는 대열은 이미 흩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건강한 상승장은 대다수 종목이 함께 오르는 장이다. 소수에 의존하는 상승은 그 소수가 흔들리는 순간 지수 전체가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채권시장이 먼저 보내는 경고
주식시장보다 먼저 움직이는 신용시장에서는 경고음이 더 분명하다.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CCC등급 하이일드 채권과 같은 만기 국채 사이의 금리 차이, 즉 스프레드가 빠르게 벌어지면서 약 3년 만에 가장 넓은 수준에 도달했다.
통상 주가가 오를 때 스프레드는 좁혀지고, 주가가 내릴 때 넓어진다. 두 흐름이 지금처럼 엇갈릴 때는 결국 주식시장이 신용시장의 방향을 뒤따라간 경우가 많았다. 국채시장도 마찬가지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9월 말 5.6%대까지 올라 2000년대 초반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10년물도 5.3% 안팎에 이르렀다.
2020년 3월 30년물 금리가 1% 안팎에 머물렀던 것을 떠올리면 불과 6년 만에 금리 환경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연방정부 부채가 40조 달러에 달하고 이자 비용만으로 국방 예산을 넘어선 상황에서, 높은 장기 금리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과 주택 모기지 금리, 그리고 주식의 적정 가치 평가에 동시에 부담을 준다.
▶금융 섹터와 상업용 부동산의 균열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으로 구성된 S&P 500 금융 섹터 지수는 최근 19거래일 동안 10% 가까이 하락했다. 장기 금리 상승과 수익률 곡선 평탄화는 대출 마진을 압박하고, 대출과 신용카드 연체 증가는 손실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 중심에 상업용 부동산이 있다.
상업용 모기지담보증권(CMBS)의 연체율은 올해 12%를 넘어서며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였던 약 10%를 이미 웃돌았다. 대도시 대형 오피스 빌딩 가운데에는 감정가가 매입가 대비 70~85% 떨어진 사례가 잇따르고 있고, 과거라면 관행적으로 승인되던 대출 만기 연장 요청이 거절되는 일도 늘고 있다. 만기를 늘려가며 버티는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비교적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다세대 임대주택도 예외가 아니다. 다세대 CMBS 연체율은 2023년 10월 1% 수준에서 최근 7.1%로 급등했고, 올해와 내년에만 각각 3,000억 달러와 2,230억 달러 규모의 대출 만기가 돌아온다.
낮은 금리로 빌린 자금을 지금의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 부담은 상당하다. 상업용 부동산이나 관련 사모펀드에 자산을 집중한 투자자라면 특히 주의 깊게 지켜볼 대목이다
▶주택시장과 실물경제의 온도 변화
주택 가격이 여전히 오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기준으로는 14개월 연속 하락했다. 신규 주택까지 포함하는 연방 센서스국의 평균 주택 판매가격은 이미 하락으로 돌아섰고, 대표적 선행지표인 잠정 주택판매와 주택건설업체 심리지수 역시 2005년 정점 이후 나타났던 흐름보다 더 길고 깊게 하락하고 있다.
경기의 체온계로 불리는 구리 가격도 눈여겨볼 만하다. 구리 선물 가격은 2022년 7월 이후 120% 넘게 올랐고, 시장 참여자들의 낙관 심리는 9년 만의 최고, 대형 투기 세력의 순매수 비중은 23년 만의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추세가 꺾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구리 가격의 정점은 경기 둔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
한편 미 달러화는 연초 저점 이후 7% 가까이 반등하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금과 은은 1월 말 고점 이후 조정을 이어가고 있는데, 투기 세력의 순매수가 여전히 기록적인 수준이라는 점에서 조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투기 열기
지수 상승의 폭이 좁아지는 것과 반대로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 열기는 오히려 넓게 퍼지고 있다. 9월 초 개인 투자자 선호 종목에서는 콜옵션 매수가 풋옵션 매수의 두 배를 넘었고, 주말 거래와 자동매매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공모 청약 경쟁률이 8,000배를 넘는 기업공개가 나왔는데, 상장 직후 600% 넘게 폭등한 주가는 이후 고점 대비 60% 가까이 떨어졌다. 트레이딩 카드 같은 수집품 시장의 거래 규모가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1990년과 2000년 고점 무렵에 나타났던 장면이다.
한인 투자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례는 한국 증시다. 6월 고점 이후 코스피가 하락하면서 레버리지 상품에 몰렸던 이른바 개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고, 이는 정치적 부담으로까지 번졌다. 인도에서도 한때 세계 주식 옵션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과열됐던 옵션 시장이 규제 강화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시장 정점 부근의 공통점은 늘 같다. 위험은 가장 커졌는데 위험에 대한 경계심은 가장 낮아진다는 것이다.
▶투자자가 점검해야 할 포트폴리오
이러한 신호들이 당장 다음 주의 폭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경고 신호는 방향을 알려줄 뿐, 정확한 시점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위험과 보상의 균형이 투자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첫째,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실제로 얼마나 분산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S&P 500 인덱스 펀드 하나만 보유해도 소수 초대형 기술주에 대한 집중도는 상당히 높다. 둘째, 그동안 쌓인 평가차익의 일부를 실현해 목표 자산배분 비율로 되돌리는 리밸런싱을 고려할 시점이다. 셋째, 단기 국채나 머니마켓 같은 현금성 자산이 연 4%대 수익을 제공하고 있어 기다리는 비용이 크지 않다. 넷째, 장기 금리가 20여 년 만의 고점 부근에 있는 만큼 장기 우량 채권은 향후 경기 둔화 국면에서 포트폴리오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한 번에 매수하기보다 시차를 두고 분할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 상품이나 옵션을 활용한 단기 매매,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 관련 투자의 비중도 점검해야 한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시장이 가장 불안해 보일 때가 아니라 가장 평온해 보일 때인 경우가 많다. 지금의 미국 증시는 지수만 보면 고점 부근에서 안정적이지만, 상승에 참여하는 종목의 폭, 신용 스프레드, 금융 섹터, 부동산 신용 등 여러 지표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신호를 외면하는 것도, 반대로 공포에 휩싸여 모든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자산배분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특히 은퇴를 앞두었거나 이미 은퇴 자금을 인출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하락장 초기에 큰 손실을 입을 경우 회복이 훨씬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향후 2~3년간 필요한 생활 자금은 안전 자산으로 확보해 두고, 나머지 자산의 위험 수준이 자신의 투자 기간과 감내 능력에 맞는지 점검해 보자. 4분기는 공격적 확장보다 방어적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준비된 투자자에게는 시장의 다음 국면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