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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로 돌아왔다, 슬램덩크 닮은 ‘믿음의 리더십’

중앙일보

2026.10.07 08:01 2026.10.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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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구의 부활을 이끈 권혁운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앞줄 가운데).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한국 농구의 부활을 이끈 권혁운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앞줄 가운데).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한국 농구는 지난 4일 끝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남녀 대표팀이 12년 만에 나란히 정상에 섰고, 3대3 농구에서도 남자가 금메달, 여자가 동메달을 땄다. 특히 2m20㎝의 장신 장쯔위가 이끄는 중국을 꺾은 여자농구 준결승은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초대박 드라마급’ 화제를 모았다.

7일 경기도 고양에서 만난 권혁운(76·아이에스동서 회장·아래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은 “나는 뒤에서 지원했을 뿐이다. 기적을 만든 지도자와 선수들이 주인공”이라며 공을 돌렸다. 하지만 농구계에서는 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권혁운 대한민국농구협회장.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권혁운 대한민국농구협회장.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농구는 야구, 축구 못지않은 인기 스포츠였다. 그러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협회는 적자에 허덕였다. 권 회장은 2021년, 농구계가 가장 깊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협회장을 맡았다. 농구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무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권 회장은 감독과 대표 선수 선발 등은 철저하게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지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요구한 건 “국가대표는 커다란 명예이니 선수들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단 하나다.

‘믿음의 리더십’은 위기 때 빛났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부진,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가 이어졌지만 그는 2025년 협회장 연임을 택했다. 올해 초 남자 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부임한 니콜라이스 마줄스(라트비아) 감독이 초반 부진하자 “조기에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권 회장은 묵묵히 기다렸고, 마줄스는 금메달로 보답했다. 협회 직원들 사이에서 권 회장은 만화 ‘슬램덩크’에서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 잠재력을 끌어내는 북산고 안한수 감독으로 통한다.

권 회장은 “‘지원은 충분히, 간섭은 최소한으로’가 협회 운영 철학”이라며 “선수 출신이 아니라서 모든 현안에 끼어들기보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점검했다. 기업 경영처럼 실무는 역량 있는 전문가들에게 맡겼다”고 비결을 밝혔다. 그는 이어 “남자 대표팀이 우승하던 순간을 일본 현장에서 봤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긴 침체를 벗어나 다시 아시아 정상에 선 건 농구인과 팬 모두에게 큰 의미”라며 웃었다.

그는 숨 돌릴 틈 없이 다음 과제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에서 지핀 관심의 불씨를 유소년 농구로 옮겨 붙이는 일이다. 권 회장은 “지금 성적에 만족해선 안 된다. 반짝 성과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며 “유소년 단계부터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갖춰야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경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구협회는 프로농구(KBL)와 여자프로농구(WKBL)를 정점으로 유소년과 생활체육까지 단계별로 이어지는 디비전리그(승강제 리그)를 활성화해 미래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권 회장의 임기는 2029년 1월까지다. 농구는 야구, 축구에 비해 예산도 후원사도 적다. 회장의 사재 지원에만 기대 버티기는 쉽지 않다. 권 회장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쉴 틈이 없다. 자나 깨나 ‘무엇을 해야 농구에 도움이 될까’만 생각한다”며 “아시안게임에서 주목받을 만한 성과를 냈으니,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후원사와 팬을 끌어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기 동안 가장 이루고 싶은 건 성적이나 사업 성과가 아니다. 회장이 바뀌어도 계속 발전할 수 있는 한국 농구의 기틀을 만들고 싶다”며 “선수와 지도자들이 태극마크의 가치와 자부심을 지키면서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경쟁하고 성장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피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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