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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인가요?”…초·중·고 문해력 쇼크

중앙일보

2026.10.07 13:00 2026.10.0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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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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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 6년 차인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공공시설물을 주제로 한 3학년 수업 중 “가로등은 길거리에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인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중학교 교사 B씨도 비슷한 경험이 많다. 그는 “교과서에 사교육, 농어촌, 심경과 같은 단어가 나오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뜻을 설명하느라 진도 나가는 게 버거울 때가 많다”고 했다.

이처럼 교사 대다수가 학생의 문해력 저하로 수업 지도나 학생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학생들이 글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교사들은 우려했다. 상당수 교사들은 일부에서 제안하는 ‘교과서 한자 병기’가 문해력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 한층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한글날(9일)을 맞아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이 전국 초·중·고 교사 1356명을 설문한 ‘학생 문해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6%는 “최근 5년 새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답했다. ‘매우 저하됐다’는 응답이 64.2%, ‘다소 저하됐다’는 답변이 32.4%에 이른다. 응답자 98.5%가 지난 1년간 이 문제로 수업 지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특히 교사 80.2%(중복응답)는 학생들이 교과서에 제시된 설명문 등에서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문학적 맥락 이해 능력’(37.8%), 알림장 등 ‘일상적 텍스트 이해 능력’(37.6%)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많았다. 한국 학생의 문해력 저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501점)은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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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병기로 해결? 교사 63% “도움 안될 것”


청소년의 문해력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중 하나가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자는 주장인데, 박근혜 정부 당시 추진됐다가 무산된 적 있다. 현재 중장기 교육정책을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문해력특별위원회에서 일부 위원의 제안에 따라 논의하고 있다. 차정인 국교위원장은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교육부에서 정한 기초한자 1800자 중 활용도 높은 한자를 선별해 한자교육을 강화하면 어휘력 증대와 언어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찬성 측은 교과서의 한자 병기를 통해 우리말 어휘 70%에 달하는 한자를 익히면 어휘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윤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한국어문학연구회 이사장)는 “‘국(國)’이라는 한자를 배우면 국가, 국민, 애국 등 다양한 단어를 이해하기 쉽다”며 “추론·이해 능력과 어휘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문해력 특별위원회 위촉식 및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문해력 특별위원회 위촉식 및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반대 측은 한자 병기가 문해력 신장과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상규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장(목동고 교사)은 “한자 뜻을 아는 것보다 어휘 구조를 이해하고 맥락 속에서 글의 의미를 추론·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며 “말과 글은 읽고 쓰기 쉽게 변해왔다는 점에서 한자 병기는 시대적 흐름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교사노조 설문 결과 상당수 교사는 한자 병기의 효과에 회의적이었다. 응답자 63.5%는 “교과서 한자 병기가 학생 문해력 강화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되레 학생의 읽기 흐름과 독해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학생의 학업 부담과 피로를 가중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초등교사 C씨는 “이미 젊은 교사들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며 “교사에겐 업무, 학생에겐 학습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신 교사들은 문해력 강화를 위해 ‘기초 문해력 집중 지원 프로그램 확충’(63.6%), ‘독서 교육 등 독서 활동 활성화’(41.3%), ‘모든 교과에서의 읽기·쓰기·토론 등 문해력 통합 수업 강화’(29.6%) 등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아울러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 빈도 줄이기, 교육과정 개편, 국가수준 문해력 진단·평가체계 구축 등에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수연 교사노조 위원장은 “문해력 부족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 기초학력 전문교원 추가 배치를 통해 교사가 학생을 세심하게 지도할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문해력 약화를 단순히 한자 능력의 문제만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말한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는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디지털 시대 전환으로 문해력 환경이 크게 바뀐 상황에서 한자 병기가 실질적 문해력 강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며 “변화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문해력 강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보람.김민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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