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1500만 시대, ‘얼마나 키우는가’보다 ‘얼마나 끝까지 함께하는가’ // 유기동물 보호에서 ESG까지…문화예술이 던지는 책임과 동행의 질문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시대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더 이상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먹고, 여행하며 삶을 공유하는 가족이 됐다. 그러나 ‘반려동물 가족화’의 이면에는 한때 가족이라고 불렸지만 어느 순간 버려지는 동물들이 있다.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왜 유기로 끝나는가. 문제는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그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어렵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김재환 바둑이와 세리 공동대표, 이종현 대한민국엔터테인먼트협회 수석부회장]
대학로 보라아트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창작뮤지컬 ‘바둑이와 세리’는 바로 이 질문을 무대 위로 가져온다. 봉천동에서 살아가는 바둑이와 도꾸, 검둥개가 길을 잃은 개포동 강아지 세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리에게 첫눈에 반한 바둑이는 친구들과 그를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청계산을 넘으며 군견의 감시를 뚫고, 버려진 유기견 집단과 마주하며,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와 맞닥뜨리는 위기도 겪는다.
처음에는 강아지들의 좌충우돌 모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이 바라보게 되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친구를 위해 다시 돌아선다. 개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그래서 단순하면서 묵직하다. “우리는 정말 끝까지 함께하고 있는가?”
‘바둑이와 세리’에서 주목할 부분은 두 주인공의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바둑이를 ‘생존 중심의 존재’, 세리를 ‘사랑에 기대어 살아온 존재’로 설명한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던 바둑이에게 세리와의 만남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다. 자신만 생각하던 존재가 누군가를 위해 길을 나서고, 위험 속에서도 세리와 친구들의 곁을 지킨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행동으로 변하고, 행동은 책임으로 발전한다. 작품이 이야기하는 사랑 역시 단순한 설렘이 아니다. 상처와 신뢰, 연대와 치유까지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는 오늘날의 반려문화와 맞닿아 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 흐른 뒤다. 강아지도 나이를 먹고 병이 들며, 사람의 삶과 환경 역시 달라진다.
그때도 가족일 수 있는가. 사랑은 순간의 감정일 수 있지만 책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오늘의 귀여움만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 살아갈 시간까지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제시하는 우정, 책임, 용기, 동행, 약속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는 사랑’은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ESG가 기업의 경영전략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책임을 고민하는 화두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작품의 메시지는 의미가 있다. ESG의 ‘S(Social)’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면, 생명을 존중하고 책임 있는 반려문화를 만드는 일 역시 그 가치와 맞닿아 있다. 반려문화의 성숙도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얼마나 많이 키우느냐로 평가할 수 없다. 한 생명을 얼마나 책임 있게 대하는지, 버려진 생명을 사회가 어떻게 보호하는지, 이를 위해 개인과 기업, 시민사회가 얼마나 함께 움직이는지까지 바라봐야 한다.
제작진은 공연과 함께 유기동물 인식개선 캠페인 ‘끝까지함개’를 추진하고 있다. 공연이 전하는 사랑과 책임, 동행을 실제 반려문화의 변화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소, 수의사, 펫브랜드 등과 함께 입양과 책임 있는 반려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확산하고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특히 기업과 펫브랜드가 단순한 협찬을 넘어 유기동물 보호와 입양문화 확산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면 ‘끝까지함개’는 문화예술과 ESG가 결합하는 사회적 가치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에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기회가 되고,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소에는 시민과 만나는 새로운 접점이 되며, 관객에게는 공연 관람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이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뮤지컬 한 편으로 유기동물이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러나 문화에는 법과 제도가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의 장면과 질문을 남기는 일이다. 관객이 바둑이와 세리의 모험을 따라가다 유기견을 통계가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의 반려견을 한 번 더 바라보거나, 입양에 앞서 ‘나는 이 생명을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
‘끝까지함개’라는 이름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다.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의 마음을 그 생명의 마지막까지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바둑이와 세리’의 원작은 김재환 작가가 쓴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공모 대상작이다. 2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봉만대 감독의 연출로 다시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그 사이 반려동물 산업은 성장했고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이제는 그 성장의 크기만큼 책임의 깊이를 이야기할 때다.
지속가능성은 거대한 환경 담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관계를 책임지고, 사회적 약자와 생명을 보호하며,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것 역시 ESG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유기동물 문제는 반려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책임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는가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끝까지 함께하는가. 유기견을 정조준한 ‘바둑이와 세리’는 강아지의 입을 빌려 인간에게 묻는다. 사랑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하기로 했다면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는가. ‘끝까지함개’는 그 질문에 대한 공연 밖의 대답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시대라면 이제 사랑의 크기만큼 책임의 무게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ESG에 던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인지 모른다.
글
김재환 주식회사 탐구인 대표 / 바둑이와 세리 공동대표
이종현 대한민국엔터테인먼트협회 수석부회장 /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