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에 있어 가장 논란이 되는 이슈는 ‘환율 퍼즐(puzzle, 수수께끼)’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성장률이 높아지면 환율은 낮아져야 하는데 상승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도체 특수로 9월 수출이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12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83.5% 급증한 것으로 연간 1조 달러 달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수출 호조로 올해 경상수지 흑자를 4500억 달러로 전망하고 경제성장률도 3.3%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의 전망대로라면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0%에 근접하는 규모로 그동안 GDP 대비 가장 큰 흑자를 내었던 1988년 10%의 2배나 된다.
재정지출 과도하게 늘리지 말고
가계대출, 연체율 관리가 중요
제도변경·소급입법은 신중하게
정책 신뢰 확보해야 정책 효과
과잉 해외투자 국내로 돌리려면
노동 등 기업 투자환경 개선을
차준홍 기자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 경제 내부에서 취약점 찾아야 수출과 경상수지로만 보면 한국경제의 펀더맨털은 매우 튼튼하다고 할 수 있으며 과거대로라면 환율은 큰 폭으로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SK하이닉스 ADR(미국 예탁증서) 발행으로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환율이 1340원대로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변동성이 크고 상승 압력도 내재해 있다. 물론 미국 달러 강세나 일본 엔의 약세 그리고 중동 사태로 인한 국제 원유가격 상승 등 대외적 요인이 그 원인이다. 그리고 미국 성장률이 높은 데에 비해 한국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내국인의 해외주식 및 직접투자가 늘어난 것도 배경이다. 미국의 매년 연간 200억 달러 직접투자 요구로 달러 수요 증대에 대한 기대도 반영돼 있다. 그러나 450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고려하면 이런 원인만으로 지금의 환율 변동행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 경제의 내부적 불안요인이나 취약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먼저 반도체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 경상수지 흑자와 성장률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수출은 인공지능(AI) 산업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편중돼 있다. 미국 경기에 따라 반도체 수출과 경상수지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재정 적자와 국가부채가 증가하면서 국채금리가 5%를 넘어서고 있으며 높은 물가로 미국 연준(Fed)은 최근 정책금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속도조절론과 버블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가 침체될 경우 한국의 수출과 경상수지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의 추격으로 반도체를 제외하면 자동차·석유화학 등 대부분의 주력 산업은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수출 증대와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환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모두 긴축통화+확대재정 긴축통화와 확대재정 정책조합도 환율상승의 배경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3국 모두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높이는 긴축 통화정책과 국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확대재정 정책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엇박자 정책조합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조합은 고금리와 시중유동성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통화당국은 금리를 높여 시중유동성을 흡수하려 하지만 정부는 확장적 재정지출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채권금리가 높아지고 시중유동성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내년도 정부의 예산안에서 재정지출 증가율이 12.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운용으로 2030년에 국가채무는 1700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 증가를 고려한 재정운용계획이지만 시중유동성 증가는 재정적 인플레이션과 환율상승 기대를 높일 수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여기에 경상수지 흑자 또한 시중유동성을 늘린다. 통화량은 통화당국의 저금리정책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의해서도 늘어나지만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이 유입되는 경우도 증가한다. 1980년대 후반 저금리·저환율·저유가의 3저 호황 때도 경상수지 흑자는 유동성을 증가시켜 부동산과 주식가격을 크게 높인 적이 있다. 통화당국은 통화안정증권 발행으로 늘어난 본원통화를 흡수하는 중화(sterilization)정책을 실시하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중유동성을 늘리게 된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경상수지 흑자가 겹치면서 시중유동성은 크게 늘어날 것이 우려되며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면서 환율 또한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
세금 등 부동산정책 잦은 변경도 문제 정책의 신뢰도를 잃은 것도 원인이다. 정부 정책이 너무 빈번히 변경되면 정책의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정책의 효과가 감소한다. 또한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자본의 유출이 늘어나고 환율은 상승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세금제도를 포함한 부동산정책을 지나치게 자주 바꿨다. 또한 소급 적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은 국내투자를 줄이고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자본유출이 늘어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중유동성 증가는 돈의 가치 하락에 대한 불안감을 높여서 ‘통화대체’를 늘어나게 할 수 있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 예상되면 미국 달러로 통화대체가 늘어나면서 환율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특히 올해 연말부터 익명제인 미국의 달러 스태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환율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 우려된다.
환율퍼즐의 해법으로는 먼저 시중 유동성을 줄여서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춰야 한다.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토지거래허가제와 대출규제 그리고 세제개혁 등 다양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지만 유동성이 늘어날 경우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실물인 주택 가격은 다시 오를 수 있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화당국은 경상수지 흑자로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지 않도록 금리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춰야 한다.
고금리로 인한 금융부실의 확산도 막아야 한다. 가계부채는 200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는 구조적이다. 생계형 가계부채는 경기침체와 일자리 부족에, 주택구입용 가계부채는 주택가격 상승에 그 원인이 있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대출총량 규제나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를 줄일 수는 없다. 금융부실만 늘어나게 된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규제보다는 연체율을 낮추는 데에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내수 진작과 산업경쟁력 확보로 일자리를 마련하고 주택가격을 안정시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또한 통화당국은 부채위기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급격한 금리 인상을 경계해야 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선심성 지출보다 신산업 경쟁력 확보 정책의 신뢰도를 회복시키고 신성장동력으로 성장률을 높여 한국경제의 불안요인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잦은 제도변경과 소급입법에 신중해야 한다. 또한 정책의 불확실성을 낮춰서 통화대체로 달러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책의 신뢰도가 확보돼야 정책의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신성장동력 확보로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지출이 다른 선심성 지출에 투입되기보다는 신산업의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에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신산업 경쟁력 확보로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때 국내투자가 늘어나면서 환율 또한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해외투자를 국내투자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세금 등의 기업 투자환경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구축할 필요도 있다. 자본자유화 경제에서 세금제도나 기업 투자에 대한 규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을 경우 합법적 혹은 불법적 자본유출이 늘어나면서 환율은 상승압력을 받게 된다. 부작용이 많은 자본통제보다는 기업 투자환경과 제도를 개선해 해외투자를 국내투자로 전환시킬 경우 일자리가 늘어나고 환율 또한 안정될 수 있다.
환율 퍼즐의 해법은 중요한 정책과제다. 환율은 한국경제에서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원유와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물가가 높아지면서 시중 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가 초래되는 것이다. 고금리는 경기침체와 금융부실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환율의 급상승은 수출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지 몰라도 대외신인도가 낮아지면서 환차손을 우려한 자본유출이 늘어날 수 있으며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정책당국은 빈번한 정책변경을 막아 정책의 신뢰도를 높여서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낮춰야 한다. 또한 엇박자 정책조합으로 인한 고금리와 시중유동성 증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고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환율 퍼즐의 해법이 곧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 시대 극복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