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외국인 직원 취업 영주권 신청을 위한 영구 노동 인증(PERM) 프로그램 참여 자격을 정지시켰다.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이민 비자인 H-1B를 악용해 미국인을 해고하고 값싼 노동력을 유치했다는 이유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9개 대학의 J-1 비자 운용 실태도 추가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백악관 사기대책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는 JD 밴스 미 부통령은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불공정한 임금 경쟁으로부터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치”라며 이같이 발표했다.
JD 밴스 부통령이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밴스는 MS가 영구 노동 인증(PERM) 신청 규정을 편법으로 적용했다며 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통상 미국 기업에 고용된 H-1B 비자 소지자는 비자 만료 전 영주권을 신청하고, 회사는 이를 위해 노동부에 PERM을 신청한다. PERM에 따르면 고용주는 미국인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외국인 인력에게 영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미국 내에서 의무적으로 구인광고를 내야 한다.
밴스는 “MS는 시골 소도시의 작은 신문에 구인 광고를 실은 뒤 ‘회사 구인 공고를 냈으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한다”며 “그리고 이런 핑계로 미국 노동자를 사실상 외국인 계약 노예(indentured servants)나 다름없는 인력으로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H-1B 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체류 자격을 의존하고 동일 직군의 미국인보다 적은 급여를 받는 만큼 사실상 현대판 계약 노예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밴스는 “MS가 지난해 미국인 직원 6000명을 정리해고하면서도 H-1B 비자 약 6300건과 영주권 약 3000건을 취득했다”며 “수치를 따져보면, MS는 해고한 미국인 근로자 1명당 사실상 1.5명의 외국인 계약 노예로 교체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가 MS에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들은 훌륭한 미국 기업이지만, 반드시 훌륭한 미국인 근로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밴스는 이날 MS에 대해 제기한 혐의에 대해 구체적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해당 조치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MS는 지난해 제출한 H-1B 신청 약 6000건의 80%가 기존 직원의 체류 연장이나 자격 변경을 위한 것이었다며 신규 채용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미 이민국(USCIS) 통계에 따르면 MS는 H-1B 전문직 비자 발급 건수 기준 미국 내 5위 고용주다. 2026 회계연도 기준 6월까지 약 3700명의 H-1B 직원 채용을 승인받았으며, 지난 10년간 승인받은 청원 건수는 5만 3000건이 넘는다. 1위는 아마존이다.
키스 손덜링 노동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진행 중인 조사를 이유로 어도비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취업 영주권 신청 자격을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코그니전트 테크놀로지, 인포시스, 타타, 위프로, HCL테크놀로지스, 캡제미니 등 다른 기술기업도 정지 대상에 포함됐다. 손덜링은 “우리는 수십 년간 이러한 악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업들, 즉 뱀의 머리를 잘라내고 있다”고 말했다.
H-1B 프로그램은 해외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는 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H-1B 비자의 일반 신규 발급 상한은 연간 6만 5000건이며, 미국 대학에서 석사 이상 학위를 취득한 인력을 위한 2만 건의 별도 쿼터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합법 및 불법 이민 전반에 대한 단속의 일환으로 H-1B 프로그램을 계속 겨냥해 왔다. 지난 8월 H-1B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기업에 10만 3천 달러(약 1억 3800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규칙 제정안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H-1B 취업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약 1억 3400만원)로 대폭 인상하려 했으나, 연방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WP는 “구체적으로 지목된 것은 H-1B 프로그램이지만, 이번 자격 정지 조치는 다른 유형의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직원의 영주권 신청을 지원하는 MS의 역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는 특히 트럼프가 사티아 나델라 MS CEO에게 미국 기술 분야 최고의 영예인 국가기술혁신메달을 수여하기 몇 시간 전에 이뤄져 더 눈길을 끌었다. 인도 태생인 나델라 CEO도 과거 H-1B 비자를 받아 미국에서 근무했다.
한편 밴스는 이날 일부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의 교환 방문 프로그램(J-1 비자) 남용 여부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단기 교환비자인 J-1 비자는 외국인 연구원·방문객이 학술·직무 연수 목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밴스는 “다른 기관들에 비해 J-1 비자를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로 발급받아 활용해 추가 조사가 필요한 ‘비자 사기 의혹 대학’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대학은 하버드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브라운대, 피츠버그대, UC 데이비스(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캘리포니아 공과대(칼텍), 애리조나 주립대(ASU), 매사추세츠 공과대(MIT) 등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유학생과 근로자를 겨냥하는 반이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날에는 미국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이 전공 분야와 연계된 임시 취업 허가인 ‘선택적 실무연수’(OPT)에 참여할 경우 대학에 학생 1명당 7만 달러(약 9400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규칙안을 발표했다. OPT에 참여하려는 F-1 비자 비이민 학생들이 대상이다. AP는 트럼프 행정부의 잇따른 조치를 “전방위 공세(broadside)”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