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화학 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인간은 유인원과 DNA가 거의 똑같아. 하물며 남자와 여자는 얼마나 더 비슷하겠니. 결국 다 같은 사람이야.” 염기 하나하나를 비교하면 사람들의 DNA는 약 99.9%가 같고, 인간과 침팬지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DNA 염기서열의 약 98.8%가 같다고 한다. 그러니 인종과 국적, 성별이 달라도 인간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훨씬 많은 존재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작은 차이도 매우 크게 보일 수 있다. 만 명의 선수가 경쟁한다고 생각해 보자. 9천 등 선수에게 12등과 19등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러나 19등 선수에게 12등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따라잡고 싶은 상대다. 단 한 단계 올라가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12등이나 19등 선수에게는 8천 등과 9천 등의 차이가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남녀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은 아니지만, 부부싸움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하루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당신이 묵묵히 다 하지 말았어야지. 다음에는 담당자에게 먼저 하라고 말하고, 그래도 안 되면 상사에게 직접 보고해.” 남편은 아내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아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섭섭하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문제 해결사인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편이 투자나 사업에 관한 결정을 어렵게 내렸는데도 아내가 계속 걱정하며 그의 판단을 의심하며 고쳐 주려고 할 때가 있다. 아내는 남편이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이지만, 남편은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아내가 존중하지 않고 잔소리를 한다고 느낀다. “남자는 존경을 원하고 여자는 공감을 원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이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남자도 공감이 필요하고 여자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문제는 우리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보다 자신이 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기 쉽다는 데 있다.
멀리서 보면 모두 비슷비슷한 인간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마음과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관계란 그 차이를 없애거나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답해 주는 일이다. 때로는 정답을 알려 주는 것보다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한마디가 필요하고, 걱정하며 간섭하는 것보다 “당신이 충분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니 난 당신의 결정을 믿어”라는 한마디가 필요하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주었는가가 아니라, 나의 관심과 조언이 상대방에게 공감과 존중으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존경과 공감’ 쉽지 않다. (변호사,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