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로 꼼짝 못 하고 집에서만 지내다가 동네 친구와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가 약속 시각이 많이 지나도 안 나타나서 전화해 보니 다른 곳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LA우리집 근처에는 스타벅스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서 어느 곳이라고 정확하게 지정해 주지 않으면 그런 착오가 종종 생긴다.
한국은 더하다. 몇 걸음만 걸어도 독특한 스타벅스의 초록색 로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1위 커피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매장 안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스타벅스가 미국 외의 국가에서 가장 성공한 곳이 한국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스타벅스 초창기에는 커피값이 비싸 누가 마시나 싶었다. 그러던 것이 한 두 번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타벅스 커피에 길들여졌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던 소비자들의 생각을 스타벅스가 바꾸어 놓은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브랜드라는 말이 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고, 일하고, 대화하는 ‘공간’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이 손님의 이름을 불러 음료를 전달하는 친근감도 성공 요인으로 언급된다. 게다가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텀블러와 머그컵 같은 굿즈, 꾸준히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 마케팅이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마케팅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스타벅스가 홍역을 치렀다. 그 출발은 ‘탱크 데이’ 마케팅 행사였다. 하필이면 5월 18일에 ‘탱크’라는 이름의 텀블러를 할인 판매한 것이다. 홍보 이미지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함께 사용했다.
단순한 상업 마케팅이 5·18 민주화 운동을 모독하는 표현이 돼 버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사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중요한데 한국 스타벅스는 그 점을 간과한 것이다.
논쟁은 정치적 이슈가 되며 대통령까지 나섰고, 일부에선 불매운동까지 번졌다. 스타벅스는 행사를 중단했고 그룹 회장이 사과까지 했다. 하루 전 매장이 문을 닫고 직원에게 역사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거기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일고의 경기에서 배재고의 일부 선수가 응원가를 개사해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구호를 외쳤다. 스타벅스의 ‘탱크 데이’ 마케팅 논란을 연상시켰다. 이로 인해 배제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출전 정지 6개월의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배제고 야구부원 전원과 교장, 총동창회 관계자는 광주일고를 찾아 사죄했다. 이에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배제고 학생들에게 “여러분, 고개를 들어요. 어깨를 펴요.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다독이며 눈물의 사과를 품어 주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사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에 광주일고 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마음껏 기량을 펼치면서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제일 멋진 모습”이라고 했다.
화해의 시간을 가진 후 모두 함께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다음 날, 광주일고와 동창회는 기자회견에 나섰다. 배재고 야구부를 선처해 달라고 야구협회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이 교장은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고려해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역량과 지혜를 모아달라”고 했다. 동창회장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학생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은 우리가 바라는 길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초 6개월 출전 정지였던 징계가 1개월 출전 정지로 대폭 감경됐다. 배재고 측의 진심 어린 사과와 광주일고 측의 용서 및 선처 요청이 반영된 것이다.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포츠의 가치를 승패 바깥에서 찾았다. 그는 “이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기느냐다. 승리는 기록으로 남지만 태도는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이긴 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충분히 일러주지 못했던 건 아닐까”라고 말했다.
스타벅스 논란은 용서와 화해만이 분열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교훈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비난과 처벌로 맞섰다면 또 다른 갈등과 상처만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본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안아 줌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다. 요즘 회자되는 ‘참교육’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품어준 광주일고 이규연 교장의 태도는 어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교장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편견과 억지로 갈등을 오히려 키워 가는 정치권이 보고 배워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교장의 말과 태도에서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싶다. 그의 품격 있는 대처가 단순한 미담을 넘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지역감정의 고리를 끊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