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철학 하기’라는 낱말을 처음 만났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우리의 말과 글로 공부한다? 참 신바람 나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참하게 망가져 가는 우리말의 현실을 너무도 안타깝게 여기던 터라 더욱 신선하고 반가웠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 우리말의 현실은 너무 심한 것 같다. 무리한 줄임말에 정체불명의 신조어, 외국어와 합성한 말, 아예 외래어…. 도무지 정신이 없다. 가령,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말을 아끼는 마음으로 지금은 잊혀져버린 고운 순우리말을 찾아내 널리 알린 선구자들이 새삼 고맙고 그립다. 전화기를 ‘번쩍 딱따구리’라고 하고, 이화여자대학을 ‘배꽃 계집 큰 배움터’라고 하는 식의 무리한 순우리말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잊혀진 순우리말을 찾아내는 노력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많은 선각자들께서 그런 일을 해왔다.
예를 들어, 백기완 선생은 새내기, 동아리, 달동네, 모꼬지, 노나메기, 한살매, 땅별 같은 잊혀가는 토박이말을 발굴하고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많은 작품을 한자어와 외래어 대신 순우리말로 쓰면서 평생 우리말 사랑을 실천했다. 이어령 교수는 노견(路肩)이라는 일본 투의 낱말을 ‘갓길’로 고친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깊이 공감한 것은 다석 류영모 선생의 극진한 우리말 사랑이다. ‘우리 말과 글로 철학하기’의 표본이다. 류영모 선생은 한글의 생성 원리를 밝혀 우리 말과 글로 철학을 하고자 애쓰셨으며, 특히 우리 말과 글에는 하늘의 이치가 담겨 있다고 하여 아끼며,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말을 만들어 쓰기를 즐겼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씨알 가르칠(訓民) 바른 소리(正音)’라고 순우리말로 옮겼으며, ‘노자(老子)’도 ‘늙은이’로 옮겼다. 실제로 다석은 자작시 3000수 가운데 1700수를 우리말로 지었고, 제자 함석헌 선생은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씨알(민중)들에게 어떻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 늘 고심했다고 전한다.
다석이 우리말로 옮긴 노자 ‘도덕경’은 단연 선구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제목이 ‘늙은이’다. 다석의 번역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순히 한자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아니라, 기독교, 불교, 유교 사상을 넘나들며 자신의 독창적인 ‘얼(영혼) 철학’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철학적 사유의 길을 찾은 다석은 ‘도(道)’를 ‘길’로, ‘덕(德)’을 ‘속알’로, ‘무위(無爲)’를 ‘함 없음’으로 옮겼으며, 도(道)는 우주적 진리이자 참나인 ‘얼(프뉴마)’로 해석했고, 몸나(거짓나)에서 벗어나 얼나(참나)를 깨닫는 과정을 노자 철학의 핵심으로 보았다. ‘노자도덕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상선약수(上善若水)’장을 다석의 풀이로 읽어본다. 학자들이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렇게 옮길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고 감탄한다고 한다.
'썩 잘은 물과 같구나. 물은 잘몬에게 잘 좋게 하고 다투질 않으니 뭇사람 싫어하는 데서 지냄. 므로 거의 길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