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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국밥이 하루 끼니” 건물주였던 그 노인 충격고백

중앙일보

2026.10.09 14:00 2026.10.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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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어떻게 사나

서울 탑골공원 앞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뉴스1]

서울 탑골공원 앞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뉴스1]

그의 말은 충격이었다. “선생, 여기까지 살아온 게 너무 힘드오. 어찌하면 되겠소.” 94세 박봉래씨는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3000원짜리 국밥을 힘겹게 들었다. ‘연명치료 필요 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는 한 일본 노인의 전통 시 센류(川柳·『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중)처럼, 박 노인도 그런 해학이었기를.

스포츠댄스 삼매경인 송후근씨. 김홍준 기자

스포츠댄스 삼매경인 송후근씨. 김홍준 기자

같은 날 경기도 고양시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송후근(76)씨는 스포츠댄스 스텝을 밟고 있었다. 여성과 가볍게, 하나둘, 하나둘, 돌고~. ‘저런 춤을…야했다. 이상했다…그럼에도 내 마음속에선 군고구마처럼 뜨겁고 달달한 것이 자꾸만 치솟았다.’(이서수 『그래도 춤을 추세요』 중) 송씨도 그랬다. “춤추다 보면 의욕이 솟는다”고 했으니.

1112만5000명. 65세 이상 노인은 1년 새 61만 명가량 늘었다. 총인구(5160만9000명)의 21.6%.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 지난 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30번째를 맞는 기념식 뒤 현실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재명 대통령)들이 “활기찬 일상생활을 누리고”(이중근 대한노인회장) 있을까.

‘1호선 냄새 유발자’ ‘연금충’ 등 일각의 비하 대상. ‘선배 시민’ ‘액티브 시니어’란 당당한 호칭이 붙기도 했다. 무작위로 만난 이들 삶의 궤적이 모든 노인을 대변할 순 없다. 하지만 그들의 오늘이 내일의 노인들에겐 ‘오늘’이 될 수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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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80대 “이렇게라도 움직여야”…책 펴낸 70대 “나와의 약속 지켰죠”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공교롭게도 인구 중 노인 비율과 같은 21.6%가 고령 무임승차자(올해 1분기)다. 8호선(18.8%)과 5호선(17.3%)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종로3가역(고령 무임승차자 32.4%). 3번 출구 낙원동 거리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오간다. 청년·외국인 그리고 노인. 노인의 거리로 알려진 이곳이 근처의 익선동과 함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레트로 감성 묻어나는 시간 여행 명소라면서다. 박봉래씨는 시간을 돌리고 싶어했다. 1982년 이전으로.

“꽤 잘 살았소. 카센터(자동차 수리점)로 먹고 살았고, 4층짜리 건물도 있었고. 1982년이었던 것 같아요. 포니2를 몰고 전라도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였소. 술을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벽을 들이받았어. 내가 다친 것도 그렇지만, 옆자리의 아내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어. 그날 이후로 술도, 담배도 끊었소.”

40대 중반의 음주운전은 그의 모든 걸 가져갔다. 일도, 4층 건물도…. 아내까지. 내내 앓던 아내는 지난 4월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매달 기초연금 26만원과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받는 29만원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기초연금 최대치인 34만9700원을 못 받는 걸 보면, 그가 밝히지 않은 국민연금 수령액이 있는 듯하다. 변수가 있지만, 52만4550원을 넘으면 기초연금이 깎인다. 그래도 국민연금공단 밝힌 1인 가구 월 최소생활비 136만원에 턱없이 모자라다. 이런 노인이 전국 338만 명에 이른다. 박씨는 “하루 식사는 이 3000원짜리 국밥뿐이라오”라고 했다. “집에 있으면 밥도 안 차려 먹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나와요. 운동이라도 삼아야죠.” 말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는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듯했다. “좋을 때 참는 법을 알았어야 했는데”라며 박씨는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338만명이 월 최소생활비 136만원 미달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중)는 건, 노인들에게 유배와 같다. 55~79세가 밝힌 희망 근로 연령은 73.6세다.(국가데이터처) 한국갤럽이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문제를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찬성이 59%다. 11년 새 13%포인트 높아졌다. 1981년 노인복지법으로 정해진 ‘노인=65세’를 고치려면 정년 연장, 기초연금 지급 시기, 대중교통 무임승차 등 얽히고설킨 현안도 건드려야 한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택시를 탔다. 기사가 백발이 성성하다. 노인 택시기사를 만날 확률은 50%가 넘는다. “일을 어떻게든 계속하려고 택시를 몰고 있어요. 그나마 남의 눈치 안 보고, 정년 없이도 할 수 있는 직업이죠.”

개인택시 ‘사장님’ 신대식(67)씨의 경력은 30년이 다 됐다. 외환위기 때 작은 건설업체를 청산한 뒤 뛰어들었다. “건설업 호황이었지만, 일감과 돈이 들어오는 만큼만 일했고, 돈을 썼어요. 빚이 없는 채로 회사를 처분했죠. 지금도 그래요. 몇만 원 더 벌려고 잠을 줄이면서까지 하면 탈 나요.”

초고령화는 택시업계라고 피할 수 없다. 신씨 같은 ‘노인’ 개인택시 기사가 전국에 9만2800명이다. 전체 16만4500명의 55%다. 20년 전인 2006년 9900여 명에서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서울의 경우 1억1500만원, 경기도 고양시에선 1억5000만원이면 면허를 살 수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치킨집이나 카페보다 창업비용이 적고 안정적이라 직장 은퇴자들이 개인택시에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신씨의 팁. “술만 안 마시면 돼요. 역마살이 있어야 운전이 즐겁고, 그렇다고 무리하면 안 되고요. 그리고 택시는 멈추면 안 돼요.” 그는 곧 다음 손님을 받았다. “어디 가세요?”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박지웅의 시 ‘택시’ 전문)

폐지 수레를 밀고 가는 임정자씨. 김홍준 기자

폐지 수레를 밀고 가는 임정자씨. 김홍준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택시 옆으로 노인이 밀고 가는 수레가 위태위태하게 지나갔다. 임정자(85)씨는 수레에 폐지를 평소보다 절반 조금 넘게 채웠단다. 걸음이 느린 임씨는 앞선 남성이 줍지 않고 남긴 것들만 챙겼을 뿐. ‘고물 줍기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였다. 물건이 나올 시점을 잘 잡아 때맞춰 돌아다녀야 했다.’(소준철 『가난의 문법』 중)

“이거요? 갖다 팔면 3000원 나오지. 그거 벌려고 하는 건 아니고. 집에 있으면 안 돼. 움직여야지. 안 움직이면 그냥 죽어.” 임씨는 아파트 청소를 했었단다. 70세가 넘으니 써주질 않더란다. 그는 녹색 신호를 기다려 자동차들과 함께 큼지막한 연신내역 사거리를 넘어갔다. 신호는 황색, 적색으로 바뀌었지만, 그는 거리의 반을 겨우 넘었을 뿐.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존 경로가 바로 폐지를 줍는 일이다.’(소준철 『가난의 문법』 중)

이런 폐지 줍는 노인들을 정부는 2024년부터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노인형 일자리 ‘자원재활용 사업단’이다. 평균 37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비제도권’ 폐지 줍기 노인들이 버는 15만9000원보다 2.3배 많은 액수다. 그런데, 임씨는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매일 나가. 나는 3~4일에 한 번 나가는 거지. 내가 나가고 싶을 때. 오늘은 그만하고 가야지. 멈출 때도 알아야지.”

교통지킴이로 나선 70대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초등생을 보살펴 주고 있다. 김홍준 기자

교통지킴이로 나선 70대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초등생을 보살펴 주고 있다. 김홍준 기자

송후근·홍명숙(68)·이경원(66)씨의 댄스 스텝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노인종합복지관. 댄스로 땀을 쫙 뺀 이들이 뽀얀 얼굴로 마주했다. 이들은 복지관에서 어울릴 수 있는 걸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65세부터인 줄 알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들어왔어요. 그런데 60세부터라더군요. 5년을 허송세월한 것 같아요.”(홍씨) “5년? 손해보셨네.(웃음) 복지관을 경로당으로 알고 왜 가느냐고 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아요. 경로당이 텃세도 있다며 꺼리는 데다가 자신이 노인임을 인정하기 싫어하기도 하고요.”(송씨) “전 노인이 되기 전인 63세에 왔어요.(웃음) ‘노인복지관’의 ‘노인’보다 ‘복지’를 우선해서 보면 맘이 편해질 거에요.”(이씨)

이 복지관의 김유미 평생교육과 과장은 “고령 인구가 늘면서 60대와 90대 노인도 세대 차가 드러난다”며 “이들을 묶어주거나, 세대별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복지관의 숙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어르신들이 화끈하게 아쿠아로빅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어르신들이 화끈하게 아쿠아로빅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노인들의 춤은 이어졌다. 복지관 근처 세이브존 수영장. 어르신 67명이 강사 이수인(43)씨의 동작에 맞춰 ‘신나게’ 아쿠아로빅을 하고 있었다. “내가 49세에 직장암 말기였는데, 20년 넘게 물에서 뛰어놀다 보니 지금 멀쩡하다니까.”(정미경·70)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권했는데, 아쿠아로빅을 하다 보니 받을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이명희·72) 이 강사는 “무엇보다 어머니들께서 즐거워하시는 게 아쿠아로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을 마치고 나온 여성들(남성은 한 명도 없었다)은 로비에 앉아 이런저런 간식을, 웃음과 함께 나눴다.

‘갑자기 앞에 당근 조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침 (아쿠아로빅) 수업이 끝나면 로비에 모여앉아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나눠 먹던 무리 중 한 분이었다. 받아서는 안 된다고 나의 본능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유교 국가에서 32년 살아온 내 손이 더 빨랐다.’(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중)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복지관서 댄스…여럿이 어울리니 좋아”
펜을 드는 노인도 있다. 윤정화(72)씨는 책 『코펜하겐에서 베를린까지』를 냈다. “30대 중반에 한 영문학 교수가 70세에 등단한 메리 웨슬리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유했어요. 작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고 나도 70(세)에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세월이 흐르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책이라도 남겨서 뿌듯합니다. 어려웠던 거요? 띄어쓰기였죠.”(웃음)

‘폐허 속에도 반드시 재생의 불씨가 있다’는 메리 웨슬리의 『카모마일 잔디』 속 구절은, 노인도 언제든지 열정적일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어반스케치에 빠진 곽민수씨. 김홍준 기자

어반스케치에 빠진 곽민수씨. 김홍준 기자

곽민수(82)씨는 어반스케치를 한다. “노년의 취미로 이것처럼 좋은 게 있을까요. 걷기·관찰·기억, 사람과의 만남이 함께 어우러진 활동입니다. 무엇보다 익숙한 세상을 천천히, 새롭고 깊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림을 그리면 그날의 작은 흔적 하나가 남는 겁니다.” 곽씨의 시선 너머, 땅이 있다. 그곳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에서 지정기(81)씨가 밭일 중이었다. “대곡역세권 개발? 가봐야 아는 거지. 조그만 밭뙈기 하나로 호강할 생각도 없고. 농지조사는 무슨. 일하려는 사람은 계속 일하게 해줘야지. 난 하던 밭일만 힘닿을 때까지 하려고. 병원만 안 가도 어디야.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죽으면 그게 호강이지 뭐.”

밭일 중인 지정기씨. 김홍준 기자

밭일 중인 지정기씨. 김홍준 기자

낙원동에서 만났던 94세 박병래씨는 아내를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았다. 그는 언제까지 3000원짜리 국밥을 먹으러 갈 수 있을까. 그를 돌볼 사람은 누굴까.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인 인구 비율)은 37.7%다.(국가데이터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다. 박씨는 “돈이 없으니 자식들과 멀어졌다”고 했다. 그도, 가족 돌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65%(한국리서치) 중의 한 명이었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김홍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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