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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400만원 경비 구한다더니”…러시아 전선 끌려간 외국인들

중앙일보

2026.10.09 14:00 2026.10.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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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광고를 보고 러시아로 간 외국인들이 전선에 투입되고, 소셜미디어(SNS)에서 일감을 찾던 우크라이나 청소년들이 테러를 저질러 수감되는 등 우크라이나전쟁에 민간인이 동원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19일 페루 수도 리마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러시아군에 모집된 페루인들의 가족들은 이들이 취업 제안에 속아 전선에 투입됐다며 귀환을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페루 수도 리마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러시아군에 모집된 페루인들의 가족들은 이들이 취업 제안에 속아 전선에 투입됐다며 귀환을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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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0만원 일자리 덫…전 세계로 뻗은 모집망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지난달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비영리 조사단체 코드 포 아프리카(CfA)의 조사를 인용해 러시아군 모집에 쓰인 웹사이트, SNS 계정, 메신저 채널 등을 최소 135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모집책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남미·아시아·중동의 구직자에게도 각 지역 언어로 접근했다고 한다.

외국인 구직자를 겨냥한 광고에는 건설·경비 업무, 영화 촬영 현장의 일자리 등이 등장했다. 러시아 비자나 시민권 취득을 돕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일부 지원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취업 준비에 착수한 후에야 러시아군으로 참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보수는 계약금 최대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월급 3000달러(약 400만원)에 달했다. 전투 중 숨지면 유족에게 6만 달러(약 8000만원)를 준다는 약속도 붙었다.

지원자를 데려오는 모집책에게는 수수료가 약속됐다. CfA 보고서를 분석한 폴란드 팩트체크 단체 프라우다협회에 따르면 한 모집 사이트는 지원자가 러시아행 비용을 내면 모집책에게 1명당 1000달러(약 133만원)를, 업체가 여행비를 부담하면 150달러(약 20만원)를 준다고 제시했다. 이런 식으로 주요 모집 업체 4곳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모집책이 지원자의 계약금에 손을 댄 사례도 발견됐다. 모집책 한 명이 가나인 14명의 입대 계약금에서 2만5000달러(약 3325만원) 이상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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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수술비 벌러 러시아행…협박 받고 계약서 서명

엘파이스가 보도한 페루의 퇴역 군인 호르헤의 사연을 보면 이런 일자리 제안이 사실상 사기극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그는 아내의 암 수술비를 벌려고 러시아행을 택했다. 경비업체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가 대사관, 병원, 학교를 지키면 계약금 2만 달러(약 2660만원)에 월급 2500달러(약 330만원)를 준다고 했다. 러시아 남성들이 전선으로 떠나 경비원이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지난 5월 4일 페루 수도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서 집회 참가자가 러시아군에 모집된 친척의 사진을 들고 행방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거짓 제안에 속아 러시아군에 모집됐다는 페루인 3명이 귀국해 최근 2주간 귀국자는 15명으로 늘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월 4일 페루 수도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서 집회 참가자가 러시아군에 모집된 친척의 사진을 들고 행방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거짓 제안에 속아 러시아군에 모집됐다는 페루인 3명이 귀국해 최근 2주간 귀국자는 15명으로 늘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3월 25일 모스크바로 향한 호르헤는 전선으로 보내질 처지가 됐다고 아내에게 전해왔다. 협박을 받아 러시아어로 된 계약서에 서명했고, 신분증도 빼앗겼다고 했다.

입금은 전혀 없었고 소식도 끊겼다. 지난 5월 6일 돌아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왓츠앱 음성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증언이 나왔다. AP통신이 지난 2월 인터뷰한 케냐인 남성은 배관공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러시아로 향했지만 도착 직후 여권을 빼앗겼고 며칠간 군부대에 머문 뒤 전선으로 끌려갔다고 밝혔다. 전선에서 탈출해 모스크바 케냐 대사관을 거쳐 귀국한 사례도 나왔다.
지난 3월 5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러시아군에 모집된 케냐인들의 가족과 인권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가족들의 귀환과 러시아군의 자국민 모집 금지를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5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러시아군에 모집된 케냐인들의 가족과 인권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가족들의 귀환과 러시아군의 자국민 모집 금지를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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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만원 벌려다 징역 5년 받은 청소년

전쟁 속 혼란을 틈탄 돈벌이의 유혹이 청소년들을 테러로 내모는 사례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러시아 측에 포섭됐다가 수감된 우크라이나 청소년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18세 청소년 야로슬라프 수잔스키가 텔레그램 광고에 응한 건 16세 때였다. WP에 따르면 생활비가 부족했던 그는 165달러(약 22만원)를 받고 철도 신호설비에 불을 질렀다.

이후엔 6만 흐리우냐(약 190만원)를 약속받았다. 전파 방해장치인 줄 알고 폭발물을 옮기다 붙잡힌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0만원을 벌려다 5년의 자유를 빼앗긴 셈이다.

텔레그램에서 트럭 운전기사 구인 광고를 올리고 10달러를 받은 다른 한 소년의 경우 두 배의 보수를 받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모욕하는 낙서를 썼다. 이후 240달러(약 32만원)에 하르키우의 철도 전력설비에 불을 지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소년은 거절하면 아버지를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공격 실행 과정에서 청소년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에서는 폭발물이 예정보다 일찍 터져 17세 소년이 숨졌다. 함께 있던 15세 친구는 두 다리를 잃었고, 행인 두 명도 다쳤다.

지난해 11월 27일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주의 한 마을에서 나탈리아라는 이름의 어머니가 집 정원에 서 있다. 그의 아들은 러시아 측 지시로 철도시설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금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7일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주의 한 마을에서 나탈리아라는 이름의 어머니가 집 정원에 서 있다. 그의 아들은 러시아 측 지시로 철도시설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금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로이터=연합뉴스

WP는 이런 범죄로 우크라이나에서 복역 중인 미성년자가 13명이라고 전했다. 유사 혐의로 구금된 청소년은 누적 인원 기준 300명을 넘었다.

영국의 비영리 언론단체 전쟁평화보도연구소(IWPR)도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경찰 통계를 인용해 최근 1년간 아동·청소년들이 러시아 정보기관의 지시로 저지른 범죄가 600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IWPR은 “우크라이나 국내법에 따라 이들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만 전쟁 범죄의 희생자로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을 적대행위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근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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