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과기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중국 1위와 2위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곳 국정감사장에 직접 공수해 왔습니다. 오른쪽 출입문을 함께 보시지요.”(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약 130cm 높이의 흰 로봇 두 대가 6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에 아장아장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회의장 정중앙에 자리 잡더니, 속기사에게도 닿을 듯한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두 팔을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25초간의 춤사위가 끝난 뒤 퇴장하려던 두 로봇이 부딪히고 길을 잃자 회의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과 한준호 민주당 의원 사이에 한차례 고성이 오가면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전환됐다. 이날 국감이 끝난 뒤엔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구해왔냐”며 문의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 의원의 시연 질의는 중국의 ‘피지컬 AI’ 발전 속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이 의원은 이날 “올해 상반기 선진 5개국 기준 중국의 휴머노이드 특허 점유율이 60.8%로 급상승했는데, 한국은 4.6%”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내역을 살펴보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R&D 예산은 2024년까지 단 1원도 배정되지 않았다”고 질의했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지난해 국감부터 중국의 AI 로봇 기술력 상승을 지적해왔다”며 “올해도 상황이 마찬가지란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의원이 직접 중국 본사에서부터 공수해왔고, 며칠 전 한국에 도착했다”며 “혹시 모를 손상을 막기 위해 특수 화물차인 무진동 차량에 태워왔다”고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AI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세계적 화두인 올해, 국정감사에는 첨단 기기를 동원한 의원들이 유독 많았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7일 국방위 국감장에 까만 뿔테 디자인의 ‘AI 스마트글래스’를 쓰고 입장했다. 그는 회의장을 스마트글래스로 촬영한 뒤 강신철 국방부 장관에게 “이게 스마트글래스인지 아셨냐. 지금도 촬영 중”이라며 “스마트글래스를 끼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국방부 규정이 없다”고 했다. 군 내부 기밀이 손쉽게 유출될 위험이 있단 취지다. 천 의원은 최근 군사보안구역에 방문한 외부인이 스마트글래스로 부대 내부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한 사례를 듣고 해당 질의를 준비했다고 한다. 6일 교육위에서는 김문수 민주당 의원도 스마트글래스를 쓴 채 회의장에서 수능 문제를 풀며 AI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AI글래스를 활용한 수능 문항 풀이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6일 교육위에서는 김문수 민주당 의원도 스마트글래스를 쓴 채 회의장에서 수능 문제를 풀며 중국 AI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사진은 김문수 의원의 스마트글래스와 연결된 AI 화면. 사진 김문수 의원실 제공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7일 국방위에서 영화소품용 권총을 꺼내들고 장전·격발을 시연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봉인지(실탄 분실 방지 목적으로 탄알집에 붙이는 종이)’ 조각이 장전 과정에서 약실에 낀 모습을 보여주며 “걸려서 격발이 잘 안 된다. (탄알집을 빼려 해도) 잘 안 빠진다”고 지적했다.
한때는 동물이 유행이었다. 김진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8년 정무위 국정감사에 ‘벵갈 고양이’를 등장시켰다. 같은 해 9월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뽀롱이’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다. 2010년에는 차명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시중에서 1000만원에 거래되는 ‘토종 구렁이’를 들고 나와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무분별한 밀렵을 고발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를 위해 가져온 벵갈고양이가 놓여져 있다. 뉴스1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국정감사 제도로는 2~3주의 짧은 기간 동안 몇백 개의 행정부처와 공기업을 몰아서 감사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매년 이색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수많은 질의 속에서 조금이라도 튀어야 주목 받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