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 상하이의 한 혼인등기처 앞에서 커플들이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중국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玄武) 호수. 호수 내에 있는 하트 모양을 한 섬에 ‘진링(金陵) 낭만 센터’란 건물이 있다. 분홍색 하트 풍선과 꽃으로 만든 아치, 로마식 기둥, 샹들리에 등으로 꾸며진 곳이다. 지하에는 사진 촬영 공간이 있고 “사랑은 옥으로 만든 잠금장치와 같다”는 시구도 걸려 있다. 반짝이는 드레스로 가득한 웨딩숍과 ‘행복’을 뜻하는 한자를 카페라테 음료 위에 그려주는 카페도 있다.
커플 대상 관광지 같지만, 엄연히 공공기관이다. 난징시 정부 산하 민정국이 운영하는 결혼 등기점(신고소)이다. 그러나 관광명소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중국에선 결혼등기소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증을 받아야 정식 부부가 되는데 지난해부터 중국 전역의 부부들이 혼인신고를 위해 낭만센터를 찾고 있다.
27살 동갑내기 가오원자와 둥페이페이 커플은 고향인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약 3200㎞ 떨어진 이곳까지 와 혼인신고를 하고 곧바로 결혼식까지 했다. SNS를 통해 낭만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사진 찍기에 완벽한 SNS 명소가 정말 많다”는 점을 선택의 이유로 들었다.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의 한 혼인등기처 앞에서 커플들이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소개한 중국의 결혼 풍경이다. 가오와 둥이 자신의 주거지가 아닌 난징까지 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건 중국 정부의 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부부가 고향에서만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전국 어디서나 신고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꿨다.
배경엔 급감하는 중국의 결혼 건수가 있다. 중국 민정국에 따르면 2015년 1200만여 건이던 결혼 건수는 10년만인 지난해 600만여 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 상반기도 327만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5% 감소했다.
자료 : 중국 민정국
중국 공산당이 문제 해결을 위해 꺼내 든 건 전가의 보도(報刀)인 ‘지방정부간 경쟁’이다.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각 성(省)·대도시 정부가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부추기는 수법을 자주 썼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해 좋은 경제 성과를 낸 지방 정부 수장은 당 중앙 무대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결혼율을 높이는 데도 활용한 것이다. 혼인신고를 어디서든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자 지방정부들은 이른바 ‘혼인 신고’ 수요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행정 공간이던 결혼등기소를 사진 찍기 좋은 명소와 관광·소비 공간으로 바꿔 중국 전역의 커플들이 찾아와 결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의 한 혼인등기처에서 한 부부가 결혼증을 받은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각 지방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커플 유치에 나서고 있다. 난징시는 쉬안후 호수 외에도 유서 깊은 공자묘 단지의 신고소에선 전통 중국 의상을 빌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산악지대인 윈난성은 결혼 사진을 위한 바위산 풍경을 내세우고, 남부 관광 명소 하이난성은 해변을 앞세운다.
일부 도시는 은행이나 지하철역 인근에 결혼등기소를 설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학생이나 이주 노동자 등 결혼에 시간과 돈을 쓰기 어려운 이들이 신속하게 절차를 마치게 하기 위해서다.
효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정책 시행 첫해 난징의 혼인등록 건수는 전년보다 15% 넘게 늘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커플만 2만2000여쌍이 됐다. 낭만센터의 사업개발 담당자인 장수친은 결혼증을 받는 순간부터 “낭만적인 사랑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WSJ은 “중국 관영매체는 이런 소비를 ‘달콤한 경제’라고 부르며 새로운 소비 성장동력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혼인신고를 하나의 관광 경험으로 만들어 결혼율, 나아가 출산율을 높이고 지역 관광과 소비까지 끌어내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2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혼인등기처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한 부부가 결혼증명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결혼등기소를 아름답게 꾸미는 정책만으론 중국 사회의 급격한 결혼·출산 감소를 반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육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문화적 상황이 변화하며 여성들이 과거처럼 경제적 안정을 위해 결혼에 의존하지 않게 됐다.
낭만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21세 대학생 위원레이는 “친구들 대부분은 결혼은 하고 싶어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명문 학교 입학 경쟁 등이 치열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장해 줄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둥과 가오 부부 역시 당분간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중국 인구를 연구하는 예류는 WSJ에 “최근 중국 정부가 이혼을 어렵게 만들어 진입(결혼)은 쉽게 하고 퇴장(이혼)은 어렵게 했다”며 “하지만 이런 조치로도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