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온 헤리티지’ 팀원이 가자 지구에서 발견한 고문헌의 불에 탄 부분을 털어내고 있다. [사진 아이즈 온 헤리티지]
2023년 12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내에 있는 대(大) 오마리 모스크의 도서관을 공격해 파괴했다. 13세기부터 이슬람 법학·신학 자료 등 각종 고문헌과 필사본 자료를 보관해왔던 곳이었다. 파괴된 도서관의 잔해 속에서 고문헌을 구하러 간 사람들이 있었다.
중장비가 없어 맨손으로 돌무더기를 헤쳤고, 작업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발굴한 자료는 디지털 자료로 변환해야 했는데 정전 때문에 어려웠다. 그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종이 한 장을 구할 때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되찾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파손된 건물 안에서 책을 정리하는 모습. 2007년 출범한 아이즈 온 헤리티지는 두 번의 재단 건물 붕괴에도 가자 지구에서 고문헌 복원·보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아이즈 온 헤리티지]
그들은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고문헌 연구자 압둘 라티프 아부 하쉼과 보존처리사 하닌 알아마시다. 지난달 유네스코는 이들을 유네스코 직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유네스코 직지상은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2004년 제정된 상으로, 기록유산 보존·연구에 기여한 이들에게 시상한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희귀 고문헌 258점 이상, 약 2만5000쪽에 달하는 기록물이 아부 하쉼과 알아마시의 노력으로 보존·디지털화됐다. 지난달 4일 직지가 인쇄됐던 충북 청주에서 열린 시상식에 둘은 참석하지 못했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들은 “개인의 영예라기보다는 가자의 기억과 유산에 바치는 헌사로 받아들인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고문헌 연구자 아부 하쉼. [사진 아이즈 온 헤리티지]
도서관에서 고문헌을 다뤄왔던 아부 하쉼은 2007년 ‘아이즈 온 헤리티지(Eyes on Heritage)’ 재단을 만들어 고문헌 등 기록유산의 복구에 나섰다. 보존 처리 전문가인 알아마시도 초기부터 이 재단에 참여했다. 재단은 곳곳에 흩어져 있거나 어딘가에 묻혀 있는 고문헌, 사진 등 기록 유산을 모으고, 목록화하고, 사본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전쟁 중인 가자에서 복원 작업을 계속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2014년 재단 건물이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무너졌다. 아부 하쉼은 “희귀 도서 1000권 이상과 수십 점의 필사본, 기록물이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그때의 경험은 고문헌의 단순 보존이 아니라 디지털화하자는 계획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폭격으로도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존처리사 알아마시. [사진 아이즈 온 헤리티지]
둘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문화적 집단학살’이라고 표현했다. “팔레스타인의 서사를 없애고,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라며 “기록유산이 사라지면 수천 년에 걸친 가자의 역사를 수십 년으로 축소하기 쉬워진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이스라엘 공습으로 또다시 재단 건물이 무너졌다. 아부 하쉼은 “겹겹이 쌓인 가자의 기억이 잔해 아래 묻힌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아부 하쉼과 알아마시는 잔해 속에 파묻힌 유산을 찾아내는 작업을 바로 시작했다. 아부 하쉼은 “기억을 담은 장소가 파괴됐지만 우리는 기억 자체를 구하려 했다”고 했다. 그는 “일부 문서는 세계 주요 도서관 어디에도 다른 사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자 지구 안에 남은 기록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부 하쉼과 알아마시는 자신들의 일에 대해 “수백 년 동안 후손에게 자료를 전해온 앞선 세대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 기억을 온전히 물려받을 권리가 있는 팔레스타인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