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케이스포(KSPO)돔에서 열린 악뮤의 단독콘서트 무대에 선 수현(왼쪽)과 찬혁.[사진 영감의샘터]
지친 나그네에게 내어주는, 따뜻한 고기와 스프같은 노래들이었다. 9일부터 3일간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KSPO)돔에서 3만명을 불러 모은 ‘소문의 낙원-악뮤 콘서트’ 서울 공연이 막을 내렸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대형 기획사(YG엔터테인먼트)를 나와 그들만의 둥지를 튼 ‘악뮤(악동뮤지션)’는, 기발한 가사로 이목을 끌었던 데뷔 초 풋풋한 모습부터 지난 4월 발매한 정규 4집 ‘개화’에서 보여준 성숙함까지 다양한 모습을 150분의 콘서트에 담아냈다.
악뮤는 모래 언덕과 바위산들이 가득한 사막처럼 꾸며진 무대 위로, 낡은 픽업 트럭을 타고 등장했다. 멤버 이찬혁과 이수현은 서커스 유랑단의 마부와 가수처럼 장식이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등장해 첫 곡 ‘봄색깔’을 불렀다. 2024년 청룡영화제에서 ‘버킷리스트’를 부르며 ‘셀프 장례식’ 무대를 꾸며 화제가 됐던 ‘컨셉 장인’ 찬혁의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날 악뮤는 특별한 게스트, 멘트 없이 30곡을 거의 쉼 없이 불렀다. 콘서트 초반에는 ‘벌레를 내고’ ‘옳은 사람’ ‘우아한 아침 식사’ ‘햇빛 블레스 유’ 등 올해 신보에 수록된 노래들을 소화했다면 중반부터는 ‘라면인건가’ ‘러브 리(Love Lee)’ ‘200%’ ‘후라이의 꿈’ 등 과거 인기를 끌었던 히트곡들을 선보였다.
데뷔 13년 차 남매의 호흡, 특히 팀의 프로듀서이자 작곡, 작사를 담당하는 찬혁의 완급 조절이 돋보였다. 수현은 청량하면서도 애잔한 특유의 목소리로 메인 멜로디를 불렀고 찬혁은 정확하고도 탄탄한, 그러나 결코 메인 보컬을 해치지 않는 화음으로 수현의 목소리를 받쳤다. 찬혁의 보컬 파트가 없을 땐 밴드를 지휘하는 듯한 제스쳐로 너스레를 떨거나 관객들 앞에서 춤을 추며 무대를 채웠다.
두 사람의 호흡은 발라드에서 빛을 발했다. 앞서 예닐곱 곡에서 화음을 맞추면서도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던 현실 남매는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부르며 마침내 진지한 얼굴을 마주했다.
수현은 “오늘처럼 기쁜날도 있겠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며 “그런 여러분의 모든 날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화음 맞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고 위로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일부 관객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찬혁의 솔로곡 ‘멸종위기사랑’ 역시 두 사람이 함께 불렀다. 수현은 찬혁이 불렀던 멜로디 파트를 한 옥타브 위의 고음으로 소화했다.
지난 11일 악뮤의 단독콘서트 무대. [사진 영감의샘터]
‘떼춤’을 추는 장관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문의 낙원’ 무대에서였다. 이미 찬혁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 있던 관객들은 노래가 시작하자 펭귄처럼 양손을 몸에 바짝 붙이고 손바닥을 편 후 리듬을 탔다.
이날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밴드 ‘악동들’이었다. 이들은 긴 고깔모자를 쓰거나 무릎까지 오는 니삭스를 신는 등 악뮤와 함께 유랑악단 컨셉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보편적인 밴드 편성에 더해진 플루트, 트럼펫, 트럼본, 퍼커션 주자들의 연주는 무대 컨셉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록 버전으로 편곡, 관객들을 뛰게 했던 ‘다이너소어(Dinosaur)’는 밴드 편곡의 백미였다.
지난 11일 악뮤의 단독콘서트 무대.[사진 영감의샘터]
앵콜곡 ‘시간을 갖자’로 콘서트를 마무리한 찬혁은 “지난 1년 간 오랫동안 투어를 계획했는데 (콘서트가 끝나니) 이상하다”며 “여러분이 없으면 꾸지 못할 꿈을 꾸고, 이뤄가고, 또 앞으로 펼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현은 “이렇게 소문의 낙원에서 모인 나그네들은 반드시 언젠가 각자의 여정을 걷다가 또 다시 만나게 돼있다”며 “같이 노래 하고 춤 추고, 캠프파이어도 했던 추억을 갖고 잠시 떠났다가 또 만나자”고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