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형태를 띠었지만,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비난이다. 결국 또 국민적인 수준의 마녀사냥이다. 확인되지 않은 대표팀 내분설이 이강인(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소셜 미디어까지 덮쳤다. 선수의 경기력을 평가하는 대신 누구와 한편인지 묻고, 인성을 단정하고, 대표팀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한다.
12일 확인한 이강인의 개인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는 최근 대표팀을 둘러싼 추측을 사실로 전제한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코너킥을 준비하는 사진 아래에서 축구와 관계없는 공격이 이어졌다.
한 사용자는 "96라인에 붙어서 흥민이 왕따시켰다며?"라고 적었다. 다른 댓글에는 "너 96라인에 꼈나봐?", "너도 흥민이 질투하니?"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강인이 손흥민을 따돌렸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댓글 작성자들은 이강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몰아붙였다. 손흥민과 1996년생 선수들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까지 추측했다.
비난은 선수의 경력을 깎아내리는 데로 이어졌다. 해당 댓글은 손흥민을 "다시 없을 레전드"라고 치켜세우면서 다른 선수들을 "어쩌다 해외진출한 애들"로 표현했다. 한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이용자는 "진짜 똑똑하면 제2의 손흥민 타이틀 달고 전 국민 응원받을 텐데 노선을 잘못 잡았네"라고 적었다. 캡처 당시 이 댓글에는 802개의 좋아요가 표시돼 있었다. 이강인이 어떤 '노선'을 선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선택을 비난하는 반응에는 수백 명의 동의가 붙었다.
"선배들 존중 좀 해라"는 댓글에도 674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훈계의 근거가 되는 이번 소집의 구체적인 행동은 제시하지 않았다.
장문의 댓글은 더 단정적이었다. 한 작성자는 이강인이 "또다시 선배 선수들과 동조해 대표팀의 질서와 기강을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사과와 반성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규정하면서 "스스로 자중하며 물러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바탕으로 현재의 행동뿐 아니라 과거 사과의 진정성까지 부정한 것이다. 대표팀의 규율을 어겼다는 주장에도 이번 소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증할 내용은 없었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불거진 '96라인 은퇴설'이었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2-0으로 꺾고 9~10월 A매치 4연전을 2승 1무 1패로 마무리했다. 이후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의 대표팀 은퇴 가능성을 거론하는 보도가 나왔다. 황인범의 눈물과 세 선수의 기념사진도 추측을 키웠다.
황인범은 은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거취를 둘러싼 의문은 손흥민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 주장 완장을 둘러싼 갈등, 집단 따돌림 주장으로 번졌다. 이강인도 그 과정에서 함께 지목됐다.
정작 이번 소집에서 공개된 이강인의 발언이나 행동 중 불화설을 뒷받침할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동료나 주장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은퇴나 갈등을 시사하는 별도의 제스처가 포착된 것도 아니다. 다른 선수들을 둘러싼 추측에 이강인의 이름까지 붙었을 뿐, 그가 이번 논란의 당사자라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 댓글은 2024년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충돌을 끌어와 새로운 의혹까지 사실로 취급하고 있다.
과거 잘못에 대한 책임과 현재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는 별개다. 한 차례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후의 모든 소문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훈련 영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콘텐츠까지 확산했다. 한 유튜브 채널은 선수들이 함께 있는 장면에 "손흥민 왕따시킨 3인방과 이강인"이라는 자막을 붙였다.
황인범의 시선은 '뒷담화'로, 선수들의 웃음은 손흥민을 조롱하는 행동으로 설명했다. 화면에 잡히지 않은 김민재까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대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해당 콘텐츠는 조회수 16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다만 이강인의 게시물에 비난 댓글을 남긴 사람들이 모두 이 영상을 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확인되는 것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왕따설'과 비슷한 주장이 선수 개인 계정에서도 사실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댓글창에 공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인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줘"라는 격려도 확인된다. 그러나 응원 메시지 사이에 근거 없는 추측과 인신공격이 끼어들면서 대표팀 활동을 정리한 게시물은 내분설을 따지는 공간이 됐다.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실제로 확인된 언행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증거 없이 "왕따시켰다며?"라고 묻고, 그 질문을 근거로 인성을 단정한 뒤 대표팀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다.
손흥민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이강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갈등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주장과 동료를 서로 반대편에 세워놓고 한쪽을 공격하는 행위가 대표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이강인의 댓글창에는 이미 결론이 내려진 질문들이 쌓이고 있다. 정작 빠진 것은 그 결론을 뒷받침할 사실이다. 선수에게 해명을 요구하기 전에, 비난의 근거부터 확인해야 한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