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베이지역에서 살다가 남가주로 와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날씨였다. 샌프란시스코도 맑은 날이면 하늘이 청명했지만, 수시로 안개가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늘 재킷을 챙겨 다녔다. 반면 남가주는 궂은 날을 손에 꼽을 만큼 일 년 내내 쾌청했다. ‘날씨 때문에 이사 온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시사철 만끽할 수 있는 야외 활동, 바다와 산, 한인타운의 맛있는 음식은 남가주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도시의 매력과 경제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생활비와 삶의 질을 분석하는 데이터 플랫폼 넘베오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LA는 생활비가 세계 306개 주요 도시 가운데 비싼 쪽 상위 약 5%에 속했음에도 삶의 질은 하위 10% 수준에 그쳤다. 치안과 의료, 교통과 환경, 기후 등을 종합한 생활 여건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넘베오는 단순히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질이 낮게 평가되지 않도록 주거비 등 각종 비용 항목과 생활비 등을 별도로 비교했다. 물론 이용자들이 제공한 정보와 설문 응답을 바탕으로 한 비교 지표일 뿐, 공식 통계나 모든 주민의 경험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거주 지역과 소득, 가족 구성에 따라 실제 생활 여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LA의 평가를 남가주 전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서울과 도쿄는 LA보다 생활비가 저렴하면서도 삶의 질 평가는 높았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과 장보기, 병원 방문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은 자동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남가주 생활과 전혀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실제로 서울과 도쿄에서 거주해 본 경험에 비춰봐도, 가성비 좋은 외식과 편의점, 어디든 연결되는 지하철망, 안심할 수 있는 치안 등 일상생활의 편리함은 남가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평균 편도 통근시간도 LA가 57.1분으로 도쿄(42.7분), 서울(40.4분)보다 훨씬 길었다. 안전지수 역시 LA가 46.2로 도쿄(75.9), 서울(74.6)보다 낮았고 의료지수도 LA 61.9, 도쿄 78.3, 서울 83.0으로 차이가 컸다.
반대로 낮을수록 유리한 오염지수는 LA가 68.5로 도쿄(42.5)나 서울(47.6)보다 높았다. LA가 자랑하는 기후 지수는 95.5로 두 도시를 크게 앞섰지만, 좋은 날씨만으로 다른 현실적 부담까지 상쇄할 수는 없다.
다만 주택 구입 부담은 서울이 가장 높았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PPIR)을 보면 LA가 8.2인 반면, 도쿄는 16.0, 서울은 29.1에 달했다. 서울의 내 집 마련 문턱이 LA보다 3배 이상 높은 셈이다.
그렇다고 LA의 주거 여건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렌트비와 모기지 이자, 재산세와 보험료까지 포함한 실제 부담은 이 수치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포르투갈의 포르투, 스페인의 발렌시아, 체코의 프라하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비와 높은 삶의 질을 동시에 갖춘 도시들로 꼽혔다. 그렇다고 유럽이면 무조건 싸고 살기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반 생활비 지수만으로는 주거비 부담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실제 정착 비용을 따질 때는 렌트비나 주택 구입 비용도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이번 분석이 던지는 메시지는 ‘LA 탈출’이 아니다. 직장과 사업, 부모와 자녀, 교회와 인간관계가 촘촘히 얽힌 삶의 터전을 순위표 하나만으로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어로 병원과 은행을 이용하고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살아갈 수 있는 한인 생활권의 독보적 가치를 지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LA의 햇살은 여전히 값지고 아름답다. 하지만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쉬지 못하고, 매일 길고 지루한 출퇴근길에 쫓겨 가족과 따뜻한 저녁 한 끼 함께하기 어렵다면 그 햇살을 누릴 여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살기 좋은 도시의 기준은 단순히 맑은 날이 얼마나 많은가에 있지 않다. 그곳에서 일상을 꾸려가면서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 그리고 자신을 돌볼 여유가 얼마나 남는가에 달렸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