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맞는 생일인데, 환갑이 되면서 앞자리가 5에서 6으로 바뀌었다고 마음이 괜히 뒤숭숭하다. 백세 시대에 환갑이면 청춘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60이라는 숫자는 나이 들었다는 확실한 표지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예순을 지나는 발걸음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나온 세월이 빚어낸 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이이자, 더는 젊음을 핑계 삼을 수 없는 길 앞에 서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환갑을 맞는데 아내가 물었다.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해마다 생일이면 아내는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갖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없어져서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아쉬움 없이 살아왔다.
이번에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했더니 아내가 다시 묻는다. “그럼 의자라도 하나 사 드릴까요?” ‘의자라고?’ 그 말에 왠지 마음이 끌렸다. 설교 준비한답시고, 글 쓴답시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지금 쓰는 의자는 오래 앉아 있으면 얼마 전 삐끗한 허리가 먼저 알아채고 신호를 보낸다. 그동안은 그러려니 하고 지냈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이참에 조금 편한 의자를 하나 장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의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지만 의자 하나 값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 집 형편에 그만한 값을 치를 수도 없거니와, 설혹 돈이 있다고 해도 살 마음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 제조 회사에서 반품받은 제품을 오픈 박스로 파는 것도 있었고 리퍼비시한 제품도 알아봤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중고 거래가 떠올랐다. 요즘은 온라인 중고 물품 거래가 활발하다고 해서 찾아보니, 내가 찾던 의자를 반값 이하로 판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판매자에 대한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니 괜찮아 보였다. 중고 거래 웹사이트에 가입한 뒤 어렵게 판매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가 알려 준 주소를 따라 한 시간을 운전해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중국계 이민자인 그는 가구점을 하다가 문을 닫고, 남은 물건을 집 차고에서 파는 중이라고 했다.
먼 길 달려와 줘서 고맙다며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네는데, 그의 등 뒤로 차고에 가지런히 놓인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물건들에는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려 애썼던 한 이민자의 세월이 켜켜이 배어 있었다. 나는 나대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가게 문을 닫은 사람의 마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그런 사람과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으니, 의자와 함께 마음 한 자락도 실어 온 셈이다.
환갑 선물로 받은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편한 의자에 앉으면 글이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역시 글은 어렵다. 몸은 조금 편해졌을지 몰라도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다. 글쓰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나이를 먹는 만큼 글에 대한 책임은 커지는데 내가 쓴 글과 삶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제라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걸 보니, 환갑을 맞으며 조금은 철이 드나 보다. 어쩌면 아내가 사 준 의자보다 이 깨달음이 더 귀한 환갑 선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