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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베어스의 마이크 디트카

Chicago

2026.10.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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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

박춘호

시카고 스포츠 팬들은 또 하나의 별이 지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미 프로풋볼(NFL) 시카고 베어스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마이크 디트카가 지난 9일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시카고언들에게 디트카는 단순히 성공적인 풋볼팀 감독 이상의 의미다. 그는 시카고의 스포츠였고 온갖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였다. 스포츠 선수로서 시카고를 상징하는 플레이어가 마이클 조단이라면 디트카는 시카고 감독을 의미했다.  
 
디트카는 1939년 10월 18일 펜실베니아주 카네기라는 곳에서 마이클 켈러 디트카로 태어났다. 피츠버그대학을 나왔고 풋볼에서 그는 공격이면서 러싱 공격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타이트 엔드를 맡았다. 1961년 NF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베어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 디트카는 데뷔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타이트 엔드 포지션으로는 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1000야드 리시빙 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1963년에는 현재의 수퍼볼격인 NFL 챔피언십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후 댈러스 카우보이스로 이적한 뒤에는 6회 수퍼볼을 차지하기도 했다. 디트카는 선수로서 러싱 공격을 보조하던 타이트 엔드라는 위치를 강력한 리시빙 공격까지 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갈아치운 선수였다.  
 
하지만 디트카는 감독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둔다. 1982년부터 11시즌 동안 시카고 베어스를 이끌면서 팀을 리그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에는 1985년 정규시즌에서 베어스를 15승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낸 것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46대10으로 완파하고 20회 수퍼볼 정상에 올랐다. 아직까지 베어스의 유일한 수퍼볼 우승이 디트카의 손으로 이뤄진 것이다.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디트카는 강인함과 강력한 규율, 압도적인 열정으로 무장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짙은 선글라스와 콧수염, 뒤로 단정하게 넘긴 헤어 스타일은 필드에서 선수들에게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필드에서 디트카는 섬세하게 계획된 전략을 구사하기 보다는 선수들의 정신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면서 동기부여를 추구하는 용장 스타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철강 도시 피츠버그 스타일이었다. 베어스와는 꽤 닿는 면이 많은 곳이다. “상대를 더 강하게 때리면 이긴다”는 원칙 아래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지금도 지나간 경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사이드라인에서 거친 언사로 선수와 심판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의 불같은 열정과 분노는 선수들에게 압박이 되기도 했지만 경기장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도록 하는 투지를 심어주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베어스 팀 수비 코치와 경기 중 주먹다짐을 벌이기 일보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반면 디트카는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덕목도 갖췄다. 베어스의 쿼터백 짐 맥마흔은 반항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선수였다. 디트카는 그의 스타일을 존중해 온갖 욕설을 쏟아부으면서도 그의 작전 변경 능력을 인정해 필드에서 그의 능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냉장고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윌리엄 페리의 경우 중요한 순간에 러싱 공격을 맡겨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킬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베어스 팬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풋볼에서 은퇴한 디트카는 의료비 부족과 신체적 장애, 생활고 등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단체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또 시카고 지역의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거 시설과 재활을 지원하는 기관을 오랫동안 후원하기도 했다. 아울러 디트카는 자신의 유니폼과 사진, 시가, 모조 콧수염까지 사인을 해줄 때마다 일정 금액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이 수익금은 모두 재단에 적립시키도록 하면서 좋은 일에 사용토록 하는 독특한 자선 문화도 만들었다.  
 
많은 시카고 사람들에게 디트카는 시카고 스포츠의 상징이었다. 그의 인기가 한창 전성기였을 때 인기 TV 프로그램인 ‘Saturday Night Live’에서는 그를 희화화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Da Bears’, ‘Da Coach’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디트카는 마이클 조단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시카고 베어스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감독이었고 리그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꼽히곤 하는 1985년 베어스의 얼굴이었으며 강인하고 묵직한 시카고 스포츠를 떠올리게 하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맨이었다. 이제 시카고는 전설 한 명을 보내주게 됐지만 여전히 ‘City of Big Shoulder’의 상징으로 디트카는 기억될 것이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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