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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폭력으로, 영화에 비친 현대인의 자화상

Los Angeles

2026.10.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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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스코세이지·드 니로 등 트라이베카 재회
단절과 혐오로 돌아본 1970년대 미국
영웅화 논란과 오늘날 사회적 고립 조명
’택시 드라이버‘의 영화사적 가치는 도시의 고독과 폭력을 한 인물의 불안한 내면을 통해 체험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Columbia Pictures]

’택시 드라이버‘의 영화사적 가치는 도시의 고독과 폭력을 한 인물의 불안한 내면을 통해 체험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Columbia Pictures]

트래비스 비클은 영화사에서 가장 이단적인 주인공 가운데 하나다. 그의 외로움을 우리는 어디까지 떠안아야 할까.
 
범죄와 욕망, 죄책감과 구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온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깊은 몰입과 섬세한 심리 표현으로 메소드 연기의 상징이 된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내면의 불안을 절제된 연기로 그려내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고독한 남자들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써 온 각본가 폴 슈레이더(Paul Schrader).
 
이들 넷이 지난 6월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불편한 영화로 꼽히면서도, 바로 그 점 때문에 반세기 넘게 고전으로 남은 ‘택시 드라이버’의 개봉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해병대 출신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 니로)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택시 운전을 직업으로 택한 이유다. 베트남전을 겪은 것으로 암시된다. 그는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벳시(시빌 셰퍼드)에게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첫 데이트에 그녀를 포르노 극장으로 데려가 관계를 망쳐 버린다.
 
거절당한 트래비스는 총을 사 모으고 몸을 단련한다. 그리고 벳시가 돕던 대선 후보를 노린다. 암살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열두 살 소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구하겠다며 포주 스포트(하비 카이텔)를 찾아간다.
 
카메라는 거의 한 번도 트래비스 곁을 떠나지 않는다. 관객은 그의 택시 앞유리 너머로 거리를 보고, 그가 쓰는 일기를 들으며 그의 판단을 따라간다. 뉴욕은 배경을 넘어 트래비스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심리적 공간이다. 뉴욕의 밤거리, 네온, 증기, 버나드 허먼의 음악이 트래비스의 시선과 결합한다.
 
관객은 트래비스의 독백을 들으며 그의 고립감에 다가간다. 그러나 그의 혐오와 폭력에는 끝내 동의하지 못한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그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영화는 그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관객은 군중 속에서 홀로 무너져 가는 트래비스 비클을 지켜보며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택시 드라이버’에는 역설이 있다.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것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다르다. 트래비스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태운다. 그러나 그 관계는 목적지에 닿으면 끝난다. 그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거절당하면 곧바로 타인을 혐오하는 쪽으로 물러선다.
 
고립될수록 혐오가 커지고, 혐오할수록 더 고립된다. 영화는 이 순환을 서두르지 않고 따라간다. 텅 빈 곳이라면 혼자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뉴욕처럼 사람이 넘치는 도시에서 그는 왜 자신만 혼자여야 하는지 되묻게 된다.
 
대화할 상대가 없는 사람이 적을 상상하고, 그 적에 맞서는 자신을 연습하는 거울 앞 장면 “You talkin’ to me?” [Columbia Pictures]

대화할 상대가 없는 사람이 적을 상상하고, 그 적에 맞서는 자신을 연습하는 거울 앞 장면 “You talkin’ to me?” [Columbia Pictures]

총을 겨누며 “You talkin’ to me?”라고 묻는 거울 앞 장면은 드 니로의 즉흥 연기에서 나왔다. 대화할 상대가 없는 그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말을 건다. 드 니로는 트래비스를 처음부터 괴물로 연기하지 않는다.
 
구부정한 어깨, 어색한 미소, 상대와 자꾸 엇갈리는 눈빛.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남자다. 그 수줍음 사이로 분노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에 더 무섭다. 관객은 그를 안쓰러워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드 니로의 연기가 기념비적인 이유는 외로운 사람이 자기만의 확신에 갇혀 폭력으로 향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미국 영화의 흐름 속에서 나왔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를 지나며 미국 사회가 겪은 불신과 불안을 담아냈다. 할리우드도 선악이 분명한 영웅 대신 소외되고 모순된 반영웅을 화면 한가운데 세웠다. 트래비스는 그 흐름에서 가장 어두운 쪽에 선 캐릭터다.
 
197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택시 드라이버‘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여우조연상(조디 포스터)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Columbia Pictures]

197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택시 드라이버‘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니로), 여우조연상(조디 포스터)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Columbia Pictures]

개봉 5년 뒤, 영화는 현실의 사건과 얽힌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범 존 힝클리 주니어는 이 영화에 집착했고,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려고 범행했다고 밝혔다. 영화가 폭력을 부추기느냐는 질문은 이때부터 이 작품을 따라다녔다. 2019년 ‘조커’가 이 영화의 구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을 때도 같은 논쟁이 되풀이됐다.
 
그러나 ‘택시 드라이버’는 트래비스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쪽은 영화 속 언론이다. 총격 이후 신문은 그를 소녀를 구한 시민 영웅으로 보도한다. 아이리스의 부모는 감사 편지를 보내고, 벳시는 그의 택시에 올라 그를 다시 바라본다.
 
이 결말을 죽어가는 트래비스의 환상으로 읽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광기를 영웅담으로 소비하는 방식을 비트는 장면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사회는 누구를, 어떤 이유로 영웅으로 만드는가. 마지막 순간 트래비스는 백미러 속 무언가에 다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낸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영화가 끝까지 트래비스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다른 캐릭터들은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시빌 셰퍼드가 연기한 벳시는 트래비스가 처음 본 ’흰옷의 천사‘라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트래비스의 눈으로 본 여성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관객이 그녀를 다르게 볼 틈을 영화가 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아이리스는 더 문제적이다. 10대 초반의 포스터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영화 속 아이리스는 끝내 ’구출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영화는 거의 묻지 않는다. 거리의 흑인 캐릭터들도 트래비스의 의심 어린 시선 속에서만 스쳐 간다. 영화는 그 시선을 기록할 뿐 따져 묻지 않는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 공백은 예전보다 크게 보인다.
 
그럼에도 트래비스는 낯설지 않다. 그는 호텔 방에서 한 번의 거래로 권총 네 자루를 손에 넣는다. 그가 총을 사고 몸을 단련하는 동안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은 외로움과 고립을 공중보건의 위기로 규정했다. 50년 전 스코세이지가 한 남자의 문제로 그린 고립이 이제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 셈이다. 고립된 사람은 더 늘었고, 더 눈에 띄지 않는다.
 
총격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인이 오래전부터 온라인에 분노를 쏟아냈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이미 신호는 사건 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그들을 뉴스가 아니라 이웃으로 먼저 만날 수 있었다면?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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