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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또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Los Angeles

2026.10.1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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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엔 ‘잡단학살’ 규정하며 하마스엔 느슨
테러범 성폭력 의혹 확인하고도 검증은 안 해
국제법의 엄격한 증거기준 채택 놓고 이중잣대
평화 수호 vs 정치적 악용, 진영논리 따른 공방
남아공 법조인 나비 필레이(왼쪽 사진)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노벨상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오른 쪽 사진은 지난 9일 수상자 발표를 하고 있는 노벨 위원회. [로이터]

남아공 법조인 나비 필레이(왼쪽 사진)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노벨상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오른 쪽 사진은 지난 9일 수상자 발표를 하고 있는 노벨 위원회. [로이터]

노벨상이라 해서 다 같지는 않다. 정치 바람을 유난히 타는 분야가 있다. 바로 노벨 평화상이다. 2026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둘러싼 논란은 이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
 
올해 수상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조인 나비 필레이(85). 유엔 인권최고대표,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재판소장 등을 거쳤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웠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의 책임을 규명하고 국제법을 통한 처벌에 기여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총론적으로는 받을 만해 보이지만, 각론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것도 극명하게 말이다. 특히 미국 보수층과 친이스라엘 진영은 그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한다.
 
근거는 그의 편향적 성향이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 하마스에는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군사작전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면서도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성폭력 의혹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증거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이다.
 
그가 유엔에서 일하던 시절의 행적도 문제시됐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의 인권 문제보다 이스라엘 비판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보수매체 내셔널 리뷰에 따르면 그가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재직한 2008~2014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이스라엘 비난 결의안은 39건이었다. 반면 북한은 6건, 이란은 4건에 불과했다. 중국과 러시아, 쿠바, 카타르, 튀르키예, 파키스탄 등을 겨냥한 결의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심각한 의혹도 제기됐다. 내셔널 리뷰가 인용한 전 유엔 인권담당 직원 에마 라일리의 주장에 따르면, 필레이 재임 중 유엔 측이 중국 반체제 인사 50명의 명단을 중국 당국에 넘겼다는 것이다. 라일리는 명단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구금과 고문을 당하거나 사망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필레이의 직접 관여 여부는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그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이끌었던 유엔 독립국제조사위원회의 활동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결론내렸다. 1948년 집단학살방지협약이 규정한 다섯 가지 행위 유형 가운데 네 가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집단학살이란 말은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법적 기준이 따로 있다. 특정 민족이나 종교 집단 등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는 특별한 의도, 즉 ‘집단학살의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2007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보스니아 사건 판결에서 집단학살 의도를 추론하려면 그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추론이어야 한다고 엄격하게 판단했다. 필레이의 조사위는 정황증거를 이용해 집단학살 의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이 기준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강하게 부인했다. 반면 노벨위원회는 필레이의 조사 활동을 수상 이유의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했다. 국제법 수호의 공적이라는 찬사와 국제법의 정치적 악용이라는 비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이다.
 
노먼 고다 플로리다대 교수는 13일 온라인 매체 퀼렛 기고문에서 필레이의 조사 방식과 증거 활용이 편향됐다고 지적했다. 자료 출처가 팔레스타인 측과 반이스라엘 성향 비정부기구(NGO)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성폭력 문제에서도 증거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필레이가 이끄는 위원회는 2024년 6월 보고서에서 2023년 10월 7일 공격 당시 성폭력이 여러 장소에서 일정한 양상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법의학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생존자와 직접 면담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명시했다. 일부 구체적인 의혹은 독립적으로 검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성폭력에는 증거 부족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의도를 판단할 때는 간접 증거와 정황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중잣대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노벨위원회는 국제법 질서를 지킨 공로로 필레이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지만, 비판자들은 오히려 그의 법 해석이 국제법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지지자들은 강대국이나 군사력을 가진 국가도 국제법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필레이가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정치성이 농후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원래 노벨 평화상은 선정 주체와 시상 지역부터 다른 노벨상과 다르다. 평화상 수상자는 노르웨이 의회가 선출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선정한다. 시상식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다른 노벨상들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등 학술·전문 기관들이 수상자를 선정해 스톡홀름에서 시상한다.
 
이 이중구조는 1895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하나의 군주 아래 결합된 연합국이었다. 두 나라는 1905년 분리됐지만 평화상 선정 권한은 노르웨이에 그대로 남았다.
 
선정 방식도 다르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발견과 연구 성과를 검증하는 데 무게를 두지만, 평화상은 정치적 행동과 그 의미를 평가해야 한다. 더욱이 이미 달성한 업적뿐 아니라 진행 중인 평화 노력과 미래의 가능성까지 평가 대상이 된다.
 
그래서 논란도 잦다. 1973년 베트남전 휴전협정을 체결한 헨리 키신저와 레득토의 공동 수상은 대표적인 사례다. 전쟁 수행의 핵심 인물이었던 키신저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거셌다. 레득토는 평화가 실현되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수상도 마찬가지였다. 취임 9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구체적인 성과도 없이 향후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줬다는 논란이 일었다. 반면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유명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소문만 무성한 채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 평화상은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한다지만, 그 평가 자체가 정치적 논쟁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올해 필레이의 수상은 그 평가의 잣대가 과연 공정한지를 묻고 있다. 

이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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