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5)씨는 올 상반기부터 반도체주를 조금씩 사들였다. 신용대출로 빌린 돈은 5000만원. 이달 급락장을 맞으며 평가손실이 1000만원이 넘는다. 이씨는 “추가 매수(물타기)를 하고 싶어도 실탄이 없다”며 “코스피가 7500선이 돼야 본전이 될 것 같은데, 내년 6월 대출 만기까지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스피가 연일 급락하면서 개인투자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빚을 내 투자한 ‘빚투(빚내서 투자)’ 개미에게는 단순한 손실 확대를 넘어 ‘반대매매’ 위험까지 커지고 있다. ‘반대매매’ 도미노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정근영 디자이너
15일 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4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3조7057억원이다. 지난 8월 초 27조원대에서 두 달여 만에 약 6조7000억원이 늘었다. 신용융자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것으로, 주가가 상승하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반대로 손실이 배가 된다.
문제는 주가가 급락해 담보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추가 담보를 요구받거나 보유 주식이 강제로 처분될 수 있다는 점이다. 14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반대매매 금액(미수거래·신용융자 합계)은 1129억2112만원으로, 3거래일 전인 8일(84억9703만원)보다 약 13.3배로 급증했다. 이 중 미수거래(매수대금 일부를 나중에 내는 거래) 반대매매 금액은 893억3600만원으로, 지난 7월31일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 8일(63억5900만원)과 비교하면 14배에 달한다. 증시 낙폭이 커지면서 반대매매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민환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반대매매에 따른 강제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주가 하락세가 길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초단기 ‘빚투’ 지표인 위탁매매 미수금도 증가세다. 14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은 1조3575억원으로, 이달 7일(9316억원) 이후 4거래일 연속 증가했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한 뒤 결제일까지 대금을 완납하지 못한 금액이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의 비율은 3거래일 만에 0.7%에서 7.2%로 뛰었다.
김경진 기자
일반 개인투자자들 패닉에 빠지긴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하락장에 계좌의 손실 폭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불어나서다. 올해 수익을 내던 투자자 가운데서도 수익금을 반납하고 원금 손실 구간으로 돌아선 경우도 많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한 30대 투자자는 “최근 ‘사팔사팔’(사고 팔기) 중이었는데 엊그제부터 손해가 10%에 달해 팔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요 며칠 새 손해 본 금액만 10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국내 반도체주에 투자한 40대 직장인도 “손실이 대출금을 메우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며 “마음 같아서는 물타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 자금조차 바닥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요 증권 커뮤니티에서도 억대 손실을 호소하는 글부터 추가 폭락을 걱정하는 글까지 쏟아졌다. 한 투자자는 “1억원을 날렸다. 내 돈 내놔 외국인들아”라고 적었고, 삼성전자에 투자한 한 개인은 “삼성전자는 안 망한다. 망하는 건 나”라며 자조했다. “노후생활비에 보태려고 샀는데 17% 손실이 났다. 더 사는 것도 무섭다”는 호소도 나왔다. “주식이 이 정도면 정부에서 뭐라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 “개인들 피 뽑아먹으려고 주식시장을 운영하느냐” 같은 정부에 대한 울분의 글도 올라왔다.
국내 시장을 피해 미국 증시로 눈을 돌린 ‘서학개미’들도 망연자실이다. 1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서학개미들이 대거 베팅한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3배 레버리지 ETF(SOXL)는 전 거래일 대비 13.35% 급락한 110.54달러로 마감하며 한 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증시를 떠받치는 대기 매수세도 약화하고 있다. 주식 매수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14일 97조4280억원으로, 전날보다 2조6703억원 줄며 100조원 아래로 내려왔다. 지난 6월 최고치(139조6948억원)와 비교하면 약 42조원 감소한 규모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형 반도체주에 집중된 외국인 매도를 받아줄 매수 기반이 약해지면서 하락 압력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