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 험악한 세상을 위해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예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문학에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비롯해서 헤밍웨이, 레마르크 등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걸작들을 남겼고, 미술에서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동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 피카소의 ‘게르니카’, 살바도르 달리의 ‘전쟁의 얼굴’ 등 많은 명작이 있다. 거리의 미술가 뱅크시는 벽화를 통해 줄곧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벽화를 남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로막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분리장벽과 인근 도시 베들레헴에 ‘예루살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분단과 갈등의 현장에서 치유와 화해의 염원을 담은 음악이 연주되는 예는 많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가득 채우는 쇼팽의 녹턴 20번처럼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의 벅찬 감동….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11월 9일) 직후인 11월 12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동독 시민을 위한 음악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기념 음악회에서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교향곡 7번이 연주되어, 분단의 아픔을 위로하고 자유를 축하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앞에서 러시아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했다. 30년 뒤인 2019년 4월 미국의 세계적 첼리스트 린 하렐(Lynn Harrell)이 같은 곡을 한국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군사분계선 바로 앞에서 연주했다.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음악의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겠다. 이 프로젝트는 6개 대륙, 36개 도시를 순회하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오케스트라 없이 약 130~150분 동안 혼자 연주하고, 문화와 사회의 연결을 탐구한 글로벌 문화 대장정으로, 음악이 단순한 예술 감상을 넘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문화를 통해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한 것이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베를린 장벽 등 역사적 정치적 갈등의 현장이나 상징적인 장소에서 연주하며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의 DMZ(비무장지대) 인근을 방문해 평화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1992년 5월 28일부터 22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폭탄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사라예보 시내의 같은 자리에서 매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했다. 폭탄 공격에 희생된 민간인 22명을 기리고자 22일 동안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자리에서 연주한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된 스마일로비치의 연주는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전쟁의 슬픔을 달래주고 위안을 주는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개인적 활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주요 콩쿠르인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1957년 결성된 WFIMC가 정치적인 이유로 회원 콩쿠르를 퇴출한 건 처음이었다.
대중음악의 전쟁 반대 메시지는 훨씬 적극적이다.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 존 레넌의 ‘이매진’, 제임스 테일러의 ‘네버 다이 영’, 도어스의 ‘디 언노운 솔저’ 같은 명곡이 증명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자신이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 ‘무라카미 라디오 특별판-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음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에 반대하는 뜻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