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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 읽기] 내 인생의 로그라인

Los Angeles

2026.10.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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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얼마 전 졸업반 학생 하나가 총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고민을 털어놓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정하겠어요.” 목회자로 나갈까, 공부를 더 할까. 한국으로 돌아갈까, 여기 남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말하지 못할 때, 결정은 미뤄지고 검색창과 AI(인공지능)에 던지는 질문만 늘어난다.  
 
나는 거꾸로 물었다. “그 고민을 한 문장으로 말해 볼 수 있겠나?”
 
영화계에는 이 산만함을 다스리는 도구가 있다. 주인공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가로막히는지를 한 줄에 담는 로그라인(logline)이다. 가령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쇼생크 탈출’이라면 이렇다.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은 은행가가, 희망이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이십 년 가까이 희망을 지켜 내며 자유를 준비한다.”
 
물론 삶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상실과 질병, 이민자의 불안감, 가족을 돌봐야 하는 나날은 계획표에 따라 주지 않는다. 믿음은 모든 물음에 짧은 답을 갖는 일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놓지 않을 방향을 붙드는 일이다.
 
폭력과 불의가 번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더디게 보이던 시대에 하박국은 이런 명령을 받는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  
 
흔히 개인의 꿈을 적어 붙여 두라는 말로 쓰이지만, 하박국이 새긴 것은 더딜지라도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이었다(합 2:3).  
 
그 약속을 기다리는 삶은 한 줄로 응축된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바울이 복음의 핵심으로 인용한 이 구절에서 믿음은 잠시 솟는 확신보다 오래 걸어가는 신실함에 가깝다. 약속을 붙든 사람은 긴 기다림도 견딘다.
 
다메섹 길에서 바울은 한 문장의 명령을 받았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6). 그 명령이 알려 준 것은 인생의 설계도가 아닌, 당장 내디딜 한 걸음이었다. 바울은 눈먼 채 사흘을 기다린 뒤, 아나니아를 통해 다음 길을 배웠다.
 
학생에게 던졌던 질문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1994년 신학생으로 LA 공항에 내릴 때 내 로그라인은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 돌아가 가르친다’였다. 그 문장은 교단과 학교의 요청,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 앞에서 여러 번 고쳐 쓰였고, 그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돌아갈 날을 꼽던 마음도, 고국의 강단에 서리라던 계획도 그렇게 지워졌다. 그래도 ‘가르친다’는 동사만은 한 번도 지워지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 한 줄은 결말을 알려 준 적이 없다. 다만 매번 다음 걸음을 비춰 주었다.
 
이 가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 한 문장을 적어 보자. “나는 ○○을(를) 사랑하기에, ○○에도 불구하고, 오늘 ○○을(를) 한다.”  
 
결말은 몰라도 된다. 하나님이 비추시는 다음 걸음 하나면 충분하다. 믿음의 문장은 인생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는 날 다시 읽고, 읽은 뒤에는 달려나가게 하는 문장이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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