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패트리엇 미사일이 완전히 바닥났다는 관측이 나왔다. 패트리엇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지난해 10월 17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은커녕 오히려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압박을 받으며 코너에 몰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중단했던 러시아 정유 시설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극도로 민감해하는 원유 가격을 지렛대로 한 맞대응 전략이란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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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엇 바닥났다…러 공격에 ‘무방비’ 노출
CNN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2~13일 우크라이나가 자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패트리엇을 사용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에 남은 마지막 패트리엇 미사일로 보이며, 우크라이나 패트리엇 발사대는 텅 비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의 제트 추진 드론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과학원 건물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소식통은 CNN에 “이번 공격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 거의 전부가 (요격)미사일 부족으로 요격되지 못했다”며 요격 시스템이 바닥나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당시 러시아가 쏜 미사일 중 상당수는 방공망을 뚫고 키이우 민가에 떨어져 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다. 16일엔 러시아의 잇따른 에너지 시설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6개 지역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100만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에너지기업 DTEK은 키이우 전역에 비상 정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패트리엇은 탄도미사일을 격추하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미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이 생산하며, 최신 모델(PAC-3 MSE)의 미사일 한 발당 가격이 400만 달러(약 54억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에서 패트리엇을 지원받아왔다. 트럼프 2기 들어선 미국의 직접 지원이 대폭 줄어들면서 유럽의 구매를 거친 간접 지원을 받아왔지만, 이란전쟁의 여파로 이마저도 수급이 제한된 상황이다.
지난 14일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주거용 건물.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할 패트리엇이 완전히 소진되면서 미사일 공격을 대부분 방어해내지 못하면서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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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유 중단?…우크라, 눈 감고 당할 판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우크라이나는 최근 이틀간 공습에서 조기 경보가 울리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보도했다. 공격을 막을 패트리엇이 바닥나기에 앞서, 공격을 감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찰위성 정보마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8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이번 주 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을 계속 공격할 경우 무기 판매와 정보 공유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유럽의 당국자들이 CNN에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 공격과 방어 및 군 작전용 통신에 활용하고 있는 ‘스타실드’의 속도도 갑자기 느려졌다. 스타실드는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의 군용 서비스다.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스타실드는 미국 정부가 소유·통제하며, 속도나 사용에 대한 제한은 미군과 미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적었다. 통신 속도를 낮춘 주체가 트럼프 행정부란 의미다. 그러면서 “젤렌스키가 물러날 때가 됐다”며 젤렌스키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 우크라이나의 스타실드 접속 제한이 백악관의 지시에 따른 의도적인 조치였다(로이터)는 외신 보도가 16일 나왔다. 우크라이나 측도 지난 13~14일 미 정부에 장애 원인을 문의한 결과 백악관의 결정이라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가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전혀 없다”는 부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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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벼랑끝 전술’에…트럼프 ‘교체’로 맞대응
젤렌스키는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정유 시설에 드론 69대와 순항미사일 4발을 동원해 공격했다. 동시에 러시아 남부 보로네시의 비행장을 타격해 Su-34 전투기 4대를 격추하고 2대를 파손시켰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한 공격 재개인 동시에 트럼프가 경유 가격을 잡기 위해 일방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시킨 이른바 ‘에너지 휴전’을 정면으로 파기한 행동이다. 사실상 트럼프에 대한 반격의 성격도 담겼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 기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젤렌스키는 그간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트럼프의 일방적인 압박을 수용해 자국 발전소 등을 겨냥한 러시아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왔다. 이 때문에 젤렌스키가 정유 시설 공격을 재개한 것은 자국의 방공망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트럼프의 약한 곳을 찌른 사실상의 ‘벼랑 끝 전술’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보수성향의 뉴스맥스 인터뷰에서 젤렌스키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뒤, 젤렌스키의 정유 시설 공격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는 이어 “우크라이나에 선거가 필요하다”며 재차 젤렌스키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현지시간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에서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마친 뒤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야당인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패트리엇 공급을 끊고 정보 공유와 스타실드 속도에 제한을 가하면서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 섀힌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우크라이나의 스타실드 접근 제한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며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와 정보 공유를 중단하거나 축소할 경우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원 외교위원회도 “트럼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직접 도움을 주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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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구애?…“미국 대체에 한계 분명”
일각에선 젤렌스키가 트럼프와의 정면대결을 택한 것은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가 푸틴을 지원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현지시간 1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회담을 앞두고 있는 앤디 번햄 영국 총리(오른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패트리엇, 스타링크, 미사일 조기경보체계 등 핵심 방어역량을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우리의 방어 역량의 속도가 (미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제한되고 있는 시점에 러시아가 850대 넘는 공격용 드론을 발사했다”며 트럼프의 지원 중단과 러시아의 공세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일단 유럽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그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적극적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실제 유럽 지도자들은 젤렌스키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재개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EU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전쟁 자금 대부분은 석유 수익에서 나온다”며 러시아의 자금줄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하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할 때”라며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정보 제공을 늘리고 있지만 정밀도와 범위에서 미국을 대체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며 “유럽에서 받은 F-16 전투기도 부품 공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무기 체계 등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의 지원 중단 시 전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현지시간 15일,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기간 중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홀로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지도자들은 젤렌스키에게 트럼프에 대한 비판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안보 협력 관계가 중단될 경우 당장 이를 대체할 수단이 없어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젤렌스키를 자제시켜 미국과의 파국을 막으려 할 거란 의미다.